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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이슈 다 묻혔다…아베엔 한일갈등이 꽃놀이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부적절한 사안은 북한 등 (한국으로부터 제3국)으로의 물자 유출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사이의 사안이다."

포털사이트 뉴스랭킹 한국 뉴스가 점령 #연금과 통계 등 '反아베' 이슈 힘 잃어 #야당들은 국민 여론 무서워 반대 못해 #손 안대고 코 푸는 분위기, 아베 유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서 오사카(大阪) 상점가에서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서 오사카(大阪) 상점가에서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일본의 도쿄신문은 전날 도쿄에서 열린 한ㆍ일 과장급 실무회의에서 일본 측이 이렇게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측이 이번 수출 규제 강화 조치의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해온 ‘부적절한 사안’은 제3국에의 물자 유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대북 제재를 제대로 지킨다는 한국의 말을 못 믿겠다"고 밝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 일본 정치인들이 지펴왔던 의혹들과는 다른 얘기였다.

일본 정치인들은 사린 가스로의 전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관련 재료가 북한으로 갈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작 양국 간의 첫 공식 논의에서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였다.

1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오른쪽 사진 앞부터) 한국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1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오른쪽 사진 앞부터) 한국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대신 경제산업성은 토요일인 13일에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며 공세를 이어갔다.
"한국 측이 실무회의에서 이번 규제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일본 측 브리핑 내용에 한국이 “조치의 원상회복을 분명히 요구했다”고 반론한 데 대한 재반론이었다.

일본 측은 회견에서 "한국 측에서 문제 제기는 있었지만, 의사록에서 '철회'라는 문자는 확인할 수 없었다"며 억지를 부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2. 일본 정치인들이 ‘제3국 유출설’에 혈안이 돼 있는 사이 산케이신문과 후지TV 등 소위 ‘친 아베 매체’를 포함한 대다수의 일본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고 이들의 주장을 일본 국민에게 퍼 날랐다.
 그래서인지 참의원(21일) 선거가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본 국민의 관심은 선거보다 한·일 갈등 쪽에 쏠려 있다.

14일 오전 일본의 유력 포털 사이트인 '야후 재팬'의 '가장 많이 본 뉴스 랭킹' 1위는 지지통신이 보도한 ‘한국 현지에서 들어본 한국 국민의 혼네(本音·본심)’라는 기사였다.

최상용 전 주일대사의 한국 신문 인터뷰와 산케이신문 서울 특파원의 칼럼 ‘한국의 모든 분야에 존재하는 일본 지우기’ 등 20위권 내에 한국 관련 기사가 4건이나 됐다.

반면 참의원 선거 관련 기사는 연예인 출신 30대 여성 의원의 길거리 유세 소식을 다룬 스포츠 신문의 가십성 기사가 유일하게 12위에 올랐다.
다른 언론사 사이트들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상위 10위권에 한국 뉴스가 3~4건이 올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 반면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괴롭힐 것으로 예상됐던 ‘연금’,'아베노믹스 통계 조작'이슈는 명함도 못 내밀고 있다. 한ㆍ일 갈등이란 거대 이슈에 존재감을 잃었다.

일본 언론들은 당초 연금문제가 "참의원 선거를 달굴 메가톤급 이슈"라고 분석했다.

"60대 고령 부부들의 경우 앞으로 연금 수입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30년을 더 살려면 총 2000만엔(약 2억원)을 모아둘 필요가 있다"는 금융청 보고서의 파문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를 선거 최대 이슈로 삼겠다고 별렀지만, 이제 일본 내 어느 언론도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지 않는다.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 총리가 3일 일본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참의원선거(21일) 슬로건인 ‘정치의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가 발효되는 오늘(4일)은 일본 여당이 필승을 목표로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참의원 선거 공시일이기도 하다. EPA=연합뉴스]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 총리가 3일 일본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참의원선거(21일) 슬로건인 ‘정치의 안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가 발효되는 오늘(4일)은 일본 여당이 필승을 목표로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참의원 선거 공시일이기도 하다. EPA=연합뉴스]

소위 '반(反)아베' 이슈들이 힘을 못 쓰는 사이 아베 총리는 '정치 안정이냐 정치 혼란이냐'를 앞세워 국민에게 표를 호소하고 있다.

#4. 아베 총리는 지난 4일부터 전국을 돌며 선거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문제를 화제에 올린 적은 없다.

문제는 야당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일본 국민의 반한감정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서인지 어느 야당도 이를 이슈화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마땅치 않더라도 겉으로 표현하기조차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NHK ‘일요토론’에 출연한 야당 간부들 중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바뀌기 전에 한·일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바바 노부유키 일본유신회 간사장),"전후 배상 문제는 이미 끝난 얘기인데 한국의 주장은 국제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의 대책을 지지한다"(히라노 히로후미 국민민주당 간사장)며 정부 여당을 두둔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ㆍ일 갈등 이슈가 웬만한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삼키면서 선거의 흐름은 아베 총리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참의원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4일)에 발동된 이번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일본 전문가들은 "100% 참의원 선거용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발동 시기 자체는 참의원 선거를 고려해 고른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철저하게 계산된 그 한 방이 선거판의 쟁점들을 잠재우면서 자민당과 아베 총리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의 승리를 기대하게 됐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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