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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멈춘 최저임금, 노동생산성 반영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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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호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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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시급 8350원)보다 2.87% 오른 금액이다. 2010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3차 전원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주휴 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은 1만318원이다. 월급으로 따지면 179만5310원, 연봉 2154만3720원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137만∼415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내년 2.87% 오른 시급 8590원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 #‘근로장려세제’도 고려해 결정 #노동계 “최저임금 참사” 반발

이날 사용자 위원은 시급 8590원을, 근로자 위원은 8880원을 써냈다. 두 안을 놓고 표결에 부쳐 사용자 안 15표, 근로자 안 11표, 기권 1표가 나와 사용자 안으로 의결됐다. 전날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된 마라톤 회의가 13시간 만에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용자 위원들은 “동결을 이루지 못해 아쉽지만 큰 폭의 인상으로 초래될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경제활력을 제고하고,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논평에서 “최저임금 참사가 일어났다”며 “(현 정부의 공약인) 노동존중 정책, 최저임금 1만원 실현, 양극화 해소는 완전 거짓 구호가 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경제공황 상황에서나 있을 법한 실질적인 최저임금 삭감 결정”이라며 “노동 개악 분쇄를 위해 총파업을 포함한 전면적인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당초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에 대해 동결이 예상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도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지난 5월 KBS와 대담에서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돼야 한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시급 1만원) 실현은 사실상 무산됐다.

그렇다고 완전히 공약을 어겼다고 보기도 힘들다. 주휴 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은 이미 올해 1만30원이다. 실질 시급은 내년에 288원 더 오른다. 최저임금은 1988년 도입된 이후 한 번도 동결된 적이 없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9월~99년 8월 적용분도 2.7% 인상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이던 2010년에도 2.75% 올랐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2.87%)은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수치지만, 이번 인상으로 현 정부에서 32.8% 오르게 됐다.

소상공인 입장에선 더 오르면 견디기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심의에 참여한 소상공인(2명)조차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이 나름대로 각종 경제 상황을 반영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익위원은 “(노동생산성이 반영된) 적정임금상승률과 근로장려세제(EITC)의 임금 보전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17년 3.3%, 2018년 3.6%였다. 공익위원들은 여기에 EITC 정책을 접목했다. 그렇게 도출한 적정한 인상 마지노선을 2.99%로 봤다. 그런데 사용자 위원이 이보다 10원 낮은 금액을 써냈고, 그 금액에 공익위원들이 표를 던졌다. EITC는 일을 하지만, 소득이 적은 근로자와 사업자 가구에 세금을 돌려주는 형태로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올해 9월부터 2000만원 미만(단독가구)~3600만원 미만(맞벌이가구)으로 확대되고, 지원액도 300만원으로 늘어난다.

최저임금이 고용주에게 소득분배의 책임을 떠넘긴다면, EITC는 정부가 근로자를 직접 지원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저임금 인상 대신 EITC 확대를 꾸준히 권고해왔다. 시장을 교란하는 정책 대신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라는 뜻이다. EITC의 확대가 노동계의 생계비 논리를 잠재우기에 가장 강력한 변수였던 셈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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