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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커 윤강현'까지 급파했는데…美 "한·일 잘 해결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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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원 가능한 모든 '미국통'을 동원하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미 여론전에 정부가 총력 태세로 나서고 있다.
외교부는 대미 '조커 카드'로 불리는 윤강현 경제외교조정관을 11일 워싱턴에 급파했다고 밝혔다. 차관보급 인사인 윤 조정관은 지난해 미국의 대 이란 석유제재와 관련해 한시적 유예조치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미 국무부 핵심 인사들과 긴밀한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 윤강현 조정관 워싱턴 추가 파견" #정부, 외교 자원 총동원해 대미 여론전 #美 백악관 "두 동맹국이 건설적 해결" #국무부도 "한·일 모두 친구이자 동맹"

 윤 조정관은 워싱턴 도착 직후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매슈 포틴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앨리슨 후커 한반도담당 보좌관 등과 만나 한국 측 입장을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2일 "외교부 내 '조커 카드'인 윤 조정관을 보냈다는 건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 조정관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한일관계 진단 전문가 긴급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 조정관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한일관계 진단 전문가 긴급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통인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과 외교부 고위급 인사를 동시 파견했다는 것은 대미 외교를 위한 국내 가용자원을 최대한 끌어 모았다는 것이 된다. 특히 윤 조정관이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국무부의 경제담당 차관보가 아닌 백악관 내 정무·안보담당 인사들을 만난 것이 눈에 띈다. 김 차장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윤 조정관은 포틴저ㆍ후커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직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미 고위급 경제협력 회의 준비 차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김희상 양자경제외교 국장도 국무부의 정무담당인 마크 내퍼 부차관보를 만나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는 미국 측에도 불리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논의를 위해 미국을 전격 방문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나서며 "백악관과 상하원 관계자와 만나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식 특파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논의를 위해 미국을 전격 방문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나서며 "백악관과 상하원 관계자와 만나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식 특파원

 하지만 우리 측의 전방위적 외교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차장은 10일(현지시간)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과의 면담 결과에 대해 "(멀베이니 실장대행은) 일본의 조치와 관련해선 (미국과) 동맹 국가 둘(한국, 일본) 사이에서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게, 건설적으로 해결되는 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또 11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만남 이후에는 "(라이트하이저는) 두 나라(한·일) 간에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미국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미국이 아닌 한·일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읽힌다. 또한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이나 직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 "이 문제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 정리가 이뤄져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퍼 부차관보를 만난 김 국장도 “미측이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인식하고 있다”는 용어는 통상 외교적 수사로 가장 낮은 단계의 동의 표현이다. 전날 외교부 당국자가 전한 미측 입장인 “이해했다(understand)”보다도 한 단계 물러선 반응이다.

 또 국무부는 강경화 외교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전화통화와 관련해 한국보다 한 발 늦은 보도자료를 11일(현지시간) 내면서 “두 장관이 미국-일본-한국(US-Japan-ROK)의 삼자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 했다”고 표현했다. 일본 조치의 부당성에 대한 미국 측 지지 의사를 요청한 강 장관에게 미국이 공개적으로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겠다는 답변을 한 셈이다. 전날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강 장관이 일본의 무역제한 조치가 우리 기업 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피해를 끼친다고 설명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무부 모건 오태이거스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한ㆍ일의 안보 전략 차원의 공조에 방점을 두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오태이거스 대변인은 관련 질문이 나오자, “배포한 보도자료 외에 더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은 친구일 뿐 아니라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는 국내 소식통은 “'과거 보편적 인권 문제였던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는 다르다’는 인식이 미국 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외교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위안부 문제를 비판했던 과거에 비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ㆍ미ㆍ일 삼자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약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관계 중재에 대한 청구서 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지원이나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를 연결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여론을 돌릴 것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작 이 문제의 출발점이 된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미국이 아니라 일본과의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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