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꼭 앉아서 오줌 눠야 할까? 남자가 기피하는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45)

가정에서 용변을 보는 남자들이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다. 조준 실패로 소변이 엄한 데 튀어 불결한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개 청소를 담당하는 아내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서인지 앉아서 용변을 보는 남자가 많아진듯하다. [중앙포토]

가정에서 용변을 보는 남자들이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다. 조준 실패로 소변이 엄한 데 튀어 불결한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개 청소를 담당하는 아내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서인지 앉아서 용변을 보는 남자가 많아진듯하다. [중앙포토]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남자가 줏대(?) 없어져서인지 여권의 신장인지, 아니면 페미니스트가 늘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요즘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가 많아졌(단)다. 아니 화장실 문화가 달라진 탓도 있을 듯. 가정에는 소변기가 따로 없고 남녀공통인 양변기뿐. 남자가 큰 것 말고 소변을 볼 때는 좌변기 커버를 든다.

그렇지 않아 조준을 잘못해 지리기라도 한다면 마누라의 쌍심지를 각오해야 한다. 아니, 들고 소변을 보아도 오줌발이 사방에 튄다. 불결하고 청소하기가 번거롭다고 매번 핀잔을 바가지로 듣는다. 모두 초기에는 마누라의 강요에 자존심 상하고 불편해 버티기도 하지만. 집요한 잔소리와 구박을 견딜 재간이 없어 대개는 지시에 따른다. 이상하게도 나중에는 오히려 편해진다.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한다. 나이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필자의 경험이다.

그런데 문제는 뒤처리다. 남자는 서서 볼일을 볼 경우 마지막 잔뇨를 털어서 마무리한다. 그런데 앉아서는 그 행동이 불편하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그냥 일어서면 마지막 몇 방울이 요도 속에 남아있다가 팬티를 적신다. 그리하면 축축한 기분도 문제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린내가 난다. 속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으면 주위에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면 남자가 서서 오줌을 누는 것이 생리적으로 이로울까 해로울까? 전문가의 지적이다. "남자의 배뇨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자세에 따라 배뇨나 성 기능에 큰 차이는 없고 오히려 서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결과도 있다. 남자의 요도는 'S자' 모양으로, 음경을 잡고 앞으로 살짝 들어주어야 두 번 꺾인 요도가 똑바로 펴져서 소변이 잘 나온다. 좌변기에 앉아서는 이런 자세를 취할 수가 없다.

다만 전립선비대증으로 방광 수축 능력이 떨어진 경우에는, 앉아서 소변을 봐야 복압이 올라가 배뇨에 도움이 된다. 이때도 좌변기보다는 재래식 화장실에서처럼 쪼그려 앉는 게 복압을 올리는 데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 화장실의 변천사. 경제가 발달하면서 화장실도 더욱 위생적이고 편리해졌다. 위에서부터 재래식(일명 푸세식) 화장실, 수세식 화장실, 양변기 화장실. [중앙포토]

우리나라 화장실의 변천사. 경제가 발달하면서 화장실도 더욱 위생적이고 편리해졌다. 위에서부터 재래식(일명 푸세식) 화장실, 수세식 화장실, 양변기 화장실. [중앙포토]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스트레스로 버겁게 살아가는 중년 남성에게 앉아서 소변보라는 부담을 주지 말자. 약해진 소변 줄기에 은근히 주눅 들어있는 남자들에게 자꾸 야단을 치면 오줌누기장애가 심해지고 빨리 늙는다. 남성들은 정확하게 조준하고 요령껏 마무리를 잘해서 소변이 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라고도 했다. 얼마 전 일간지에 실린 비뇨기과 전문의의 글이다.

우리의 화장실 문화는 급격하게 변했다. 고도성장의 탓인 듯하다. 화장실의 청결도는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깊다. 과거 중국이 그랬고, 현재는 인도가 그렇다. 우리의 화장실 문화의 변천사를 짚어보자. 필자 어릴 적에는 일명 '푸세식'인 재래식, 성년기에는 쪼그리고 앉는 수세식, 80년대부터는 퍼질러 앉는 비데 달린 양변기를 다 경험했다.

재래식 때는 뒤처리가 문제였다. 그땐 닦을 거리가 변변찮았다. 5~60년대 농촌에서는 볏짚으로 처리했다. 짚을 요령껏 둘둘 말아 한두 번 닦는 거로 마무리했다. 문제는 깨끗하게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짚의 딱딱함과 삐죽함에 뒤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가끔 피가 비쳐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게 원인인지 치질이 많았다.

그때는 종이도 귀했다. 신문도 없었다. 비싼 문종이와 가끔 나오는 비료 포대가 고작이었다. 문종이는 언감생심. 포대 종이가 지금 생각하면 두껍고 질감이 좋지 않아 뒤를 닦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잘 닦이는 듯하고 기분도 좋았다. 그래도 잘사는, 땅을 꽤 부치는 집이나 비료 포대가 있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오지장군'의 모습. 장군에는 술, 물, 간장, 오줌 따위를 담곤 했다. 크기가 작은 장군에는 술, 물 등을 넣고, 큰 장군에는 보통 오줌을 담아 지게로 옮겼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흙으로 빚어 만든 '오지장군'의 모습. 장군에는 술, 물, 간장, 오줌 따위를 담곤 했다. 크기가 작은 장군에는 술, 물 등을 넣고, 큰 장군에는 보통 오줌을 담아 지게로 옮겼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시골은 대소변의 장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간혹 '오줌추마리(장군)'라는 게 있어 주둥이가 좁은 옹기에 조준하여 모으기도 했다. 비료로 밭에 내기 위함이다. 재래식으로 모아둔 대변은 똥장군에 퍼 담아 농토에 뿌렸다. 비료가 부족했던 시대라 요긴하게 쓰였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아 흔히 듣던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등이 없어졌다. 동시에 수인성전염병도 크게 줄었다. 농촌의 야릇한 냄새도 사라졌다.

작금에는 지자체가 경쟁이라도 하듯 공중변소가 호텔처럼 변했다. 전국의 순위를 발표하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예전에는 화장실이라 하지 않았다. 변소, 통시, 뒷간, 측(칙)간, 작은집, 먼데, 해우소(사찰) 등 명칭도 많았다. 화장실은 우리뿐 아니라 동서를 막론하고 그 명칭이 다양한가 보다. Toilet, Restroom, Washroom, Bathroom, Lavatory, Water Closet(WC), Outhouse, Latrine, Loo, John, Thunderbox 등등. Thunder? 천둥 아닌가. 천둥 치는 박스라! 얼핏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