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놓고 벌인 자유한국당의 집안싸움에서 친박계인 김재원 의원이 웃었다.
5일 황영철 의원이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경선을 거부하면서다. 황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를 공개로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불발되자 10분 만에 의총장 밖으로 나와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1년 전 하반기 원 구성 당시 김성태 원내대표와 안상수 예결위원장과 조율·논의 과정을 거쳐 추인을 받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측근을 예결위원장으로 앉히기 위해 당이 지켜온 원칙과 민주적 가치들을 훼손했다”고 원내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선례를 만드는 데 당사자가 될 생각이 없다. 경선을 거부했고, 그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김성태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해 7월 20대 국회 하반기 상임위를 재편하면서, 한국당 몫인 예결위원장을 안상수ㆍ황영철 의원이 각각 7개월ㆍ18개월씩 나눠 맡기로 처리했다. 주요 상임위원장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처럼 교대하곤 했다. 또 잡음이 없도록 대부분 원 구성 때 순서를 정해둔다. 하지만 이번엔 김재원 의원이 뒤늦게 경선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3일 “작년에 합의가 된 것이지만, (그것은) 참여하신 분들끼리의 합의였기 때문에 새로 정리된 부분이 있다”며 “(작년 합의에) 참여하지 못한 분이 경선 의사를 표시해서 경선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정리했다. 황 의원은 당시에도 반발했지만 결정을 꺾지는 못했다.
김 의원이 예결위원장에 오르면서 당내 기류에도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황 의원이 바른정당에 참여했던 복당파라는 점 때문에 그동안 봉인돼있던 친박계-복당파의 계파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한선교 의원의 사임으로 공석이 됐던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복당파 이진복 의원 대신 친박계인 박맹우 의원이 임명된 것과 겹쳐지면서다. 한 재선 의원은 “당 살림살이를 맡는 사무총장에 이어 알짜인 예결위원장까지 친박계가 가져갔다”며 “당이 사실상 친박당으로 다시 이동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외 황교안 대표의 1등 책사로 불리는 추경호 전략기획사무부총장도 친박계다. 한편 실언으로 최근 낙마한 한선교 의원도 핵심에선 멀어졌다고 하지만 친박 출신이다.
이와 별도로 당 일각에선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의 화력 지원을 받은 나 원내대표가 친박계인 김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김 의원은 친박계 중에서도 주요 정국마다 나 원내대표를 돕는 ‘특급 도우미’로 알려져 있다.
한편 황 의원은 이날 경선을 포기한 후 친박계를 겨냥한 듯 작심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황 의원은 “더 이상 우리 당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을 우롱하는 정당(이 돼선 안 된다)”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이런 국회의원들은 단호하게 조치를 내려야 한다. 그런 조치가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보수로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한국당이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오히려 당 내에서 더 크게 싸울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당은 예결위 외에도 국토교통위원장 자리를 놓고도 진통을 겪고 있다. 당초 박순자 의원에서 홍문표 의원으로 교체가 예정돼 있었지만 박 위원장이 ‘처리할 현안이 남았다’며 사임을 거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전날 입장문을 내어 “(1년 남은 기간 중) 6개월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나머지 6개월을 홍문표 의원에게 양보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하다”고 주장한 반면 홍 의원은 “약속을 이행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