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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직접대화 나선 북한, '한국 무시전략' 근거는 '빗장 이론'

중앙일보

입력

Focus 인사이드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인사한 뒤 남측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인사한 뒤 남측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30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미·북 정상회담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그중에서도 북한의 ‘한국 무시론’이 눈길을 끈다. 이번 판문점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국을 철저히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북한, 미국과 직접 대화 '한국 무시' #미국 대통령과 담판 '위대한 지도자' #한반도에서 '빗장' 미국 빼는 전략도

‘6·30 미·북 판문점 정상회담’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난 하노이 정상회담을 다시 봉합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양자 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역할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점이 이해된다.

문제는 북한의 ‘한국 무시’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지속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 노동신문]

첫째, 북핵 해결을 위한 과정이 상향식(bottom-up)이 아닌 하향식(top-down)으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북핵 협상이 처음부터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담판형식으로 진행됐다. 양 정상이 그들의 정치 지도력을 부각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띠었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끼어들 틈이 없어졌다고 분석된다.

전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이번 판문점 회담을 한국·미국·북한의 3자 정상회담을 희망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길 원했는데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자 없이 단독으로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될 회담을 끌어낸 지도자 이미지를 원했을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했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했다고 1일 보도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의 한국 정부 배제 움직임은 더 노골적이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지난달 27일 “조미 관계(미·북 관계)는 우리(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면서 “남조선(한국) 당국은 제집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하여 북한의 ‘한국 무시’ 태도를 직접 드러냈다.

권 국장이 6·30 판문점 정상회담에도 참석했기 때문에 그의 6·27 담화에 더욱 힘이 실린다. 권 국장 말대로 북한 당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과 직접 담판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높이 추켜세우고자 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판문점 회동을 1,2,3면에 걸쳐 사진 35장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진 올리버 호담 트위터 캡처=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판문점 회동을 1,2,3면에 걸쳐 사진 35장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진 올리버 호담 트위터 캡처=뉴시스]

정상회담 다음 날인 1일 북한 관영 매체인 노동신문은 3개 면에 사진 35장을 실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주도해 나가는 ‘평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북한의 ‘한국 무시’는 그들 외교의 ‘빗장 이론’에 근거 한다. 대문에서 빗장만 빼면 문이 활짝 열린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미국이라는 ‘빗장’만 빼면 북한이 원하는 대로 한반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기대가 엿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1일 보도했다. 왼쪽부터 리용호 외무상, 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사진 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1일 보도했다. 왼쪽부터 리용호 외무상, 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사진 노동신문]

북한 당국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담판하는 외교적 틀을 유지하는 배경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핵·미사일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과 대화 채널을 구축한다고 전망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한반도 문제(평화협정 등) 논의과정에 한국을 배제하는 무시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되풀이할 가능성이 커 우려된다.

정영태 동양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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