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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선거 때까지 기다리기 답답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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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헝가리 유람선 사고에 대한 대통령의 깨알 같은 지시를 들으며 세월호와 전 정권의 무능을 한동안 되새겨야 했다. 침몰선이 떠오르자 이번엔 인기 없는 국회와 야당이 먹이감이다. 청와대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박수를 치며 국회에 대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한국당과 민주당 해산 청구 국민청원엔 한 술 더 떴다. ‘국민 평가는 선거를 통해 내릴 수 있음에도 내년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질책으로 보인다’고 ‘국민의 뜻’을 해석했다.

스스로 뽑은 국회 매번 욕하는 건 #말따로 발따로에 오만·독선 때문 #청와대는 반대 길로 가고 있는가

뭐 그런 측면이 아주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우리 국회란 게 늘 ‘역대 최악의 민폐 국회’로 평가 받는 터여서 어떤 식으로 든 손을 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4점 만점에 유일하게 1점대를 받았다. 모든 기관이 2점 이상이었다. 조사만 하면 꼴찌인 만년 동네북이다. 불신을 보내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국회를 만든 유권자들인데 매번 뽑아 놓곤 곧바로 침을 뱉는다.

주로 자기와 자기편 잇속 만을 놓고 다투는 격한 대립이 큰 원인일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대립 때문에 경제적 양극화가 커진다는 폴 크루그먼 교수의 진단도 있다. 게다가 우린 대통령도 국회도 국민이 직접 뽑는다. 국회가 선출된 권력으로서 대통령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듯이 대통령도 그럴 수 있다. 청와대가 오죽 답답하고 염려스러우면 그러겠느냐고 보는 동정론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비난하고 겨냥하는 대상이 말만 국회와 정치권이지 실제론 야당이란 걸 누구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메시지인데 중요한 건 매번 ‘국민의 뜻’을 앞세워 두들겨 팬다. 아마도 꽤 많았던 ‘좋아요’ 클릭 수나 일부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의식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클릭 수나 여론조사란 게 또 그렇다.

무엇보다 들쭉날쭉해서 도무지 참고 자료로 삼기조차 민망한 게 우리 현실이고 형편이다. 여론조사의 본령을 이탈한 설문 내용으로 누가 봐도 ‘맞춤형’ 조사가 뻔한 결과도 많다. 더 안타까운 건 ‘국민의 뜻’이 야당과 겨룰 때만 조자룡 헌창 쓰듯 편의적으로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탈원전이나 최저임금 인상, 보 철거와 같은 불리한 조사 결과를 거론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뭔가. 그때 그때 쓰임새가 다른 ‘국민의 뜻’ 아닌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水則載舟水則覆舟)고 순자는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엔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청원합니다’란 요구도 있다. ‘좋아요’ 클릭 수로만 말하면 25만 명을 넘겼다. 청와대는 여기에 대해서도 조만간 청원 답변을 해야 한다. 거기에 ‘국민 평가는 선거를 통해 내릴 수 있음에도 다음 대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질책으로 보인다’고 답변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유체이탈’이란 반발을 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다. 정치에 지시하고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회, 야당과 함께 일하는 정치가다. 아무리 시급한 현안이라도 국회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원천 불능이다.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야 하는 건 대통령제의 숙명이다. ‘국회 탓’ ‘야당 탓’만하며 손 놓고 있다면 ‘야당 협조는 필요 없으니 내 갈 길 가겠다’는 뜻이다.

국회가 왜 그렇게 밉냐고 물어보면 대개는 입 따로 발 따로인 행태와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자세를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대략 비슷한 느낌을 만들며 같은 경로를 걸었던 게 우리의 청와대 역사다. 국민 선택을 받아 출범했지만 오래지 않아 국회와 불신 기관 1, 2위를 다퉜다. 유체이탈 화법에 오만과 독선이 손꼽혔다. 문 대통령은 다른 길을 걷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했다. 글쎄다. 지금 과연 그런 것인가.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