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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연가투쟁 저지하던 교육부, 이젠 입장 바꿔 "징계 안 해"

중앙일보

입력

지난 달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 30주년 전국교사대회 . [뉴스1]

지난 달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 30주년 전국교사대회 . [뉴스1]

“전교조의 연가투쟁을 허용해 직무를 유기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

 교육시민단체인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은 12일 오전 정부서울종합청사 앞에서 유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교육부가 “전교조의 불법 단체행동이 예고돼 있음에도 사실상 불법 연가투쟁을 허용했다”는 이유였다. 이 단체의 이종배 대표는 “연가투쟁은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단체행동”이라며 “교사가 수업을 하지 않고 거리에 시위하러 가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가 이처럼 강력하게 교육부를 비판하고 나선 이유는 전교조의 연가투쟁때문이다. 전교조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1500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하는 ‘문재인 정부 규탄 전국교사결의대회’를 연다.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현 정부에 대한 실력행사 차원에서 마련됐다. 이들은 “(전교조) 법외노조는 ‘국정농단세력’과 ‘사법농단세력’의 합작품”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의 과업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엄중히 규탄의 목소리를 높인다”고 밝혔다. 다만 집회가 평일에 열리기 때문에 참여 교사들은 학교에 연가를 내야 한다.

용어사전연가투쟁

집단적으로 연가(年暇·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집회에 참여 투쟁한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교사 등 공무원은 연가를 사용하기 위해 기관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연가투쟁으로 집단 휴가를 낼 경우, 수업 결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번 연가투쟁 일정을 전교조는 일찌감치 예고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각 교육청에 교원 복무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공문만 보냈을 뿐 집회 참가 교사나 연가를 허락한 학교장 등에 대한 제재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최성유 교육부 교육협력과장은 “지난해에도 교육부가 징계 방침을 세우지 않았다. 수업 결손에 대한 대책없이 참가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별한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포함해 연가투쟁을 엄격히 제재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연가투쟁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이 달라지면서 ‘원칙이 변한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7월 전교조 연가투쟁 때도 교육부는 “정권 퇴진 운동 등과 같은 정치적 편향성을 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 연가투쟁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연가투쟁을 사실상 묵인했다.

 이는 지난 정부가 전교조 교사들이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연가를 내거나 조퇴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강력 대응해온 것과 대조된다. 2015년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집회 때 교육부는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집회 참가를 위해 조퇴·연가 신청할 경우 이를 불허하고, 허락한 교장에겐 책임을 묻겠다는 강도 높은 지침을 내렸다.

2003년 6월 서울 을지로입구역 앞 도로에서 열린 전교조 집회.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반대하기 위해 모였다. 중앙포토

2003년 6월 서울 을지로입구역 앞 도로에서 열린 전교조 집회.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반대하기 위해 모였다. 중앙포토

 같은 해 3월에도 전교조가 ‘공무원 연금개혁’ 관련 연가투쟁을 예고하자 위와 비슷한 내용의 공문을 보내 강력 대응했다. 특히 각 학교에 시달한 공문을 통해 교사들이 연가투쟁에 참여함으로써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에서 금지하는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에 해당해 사법조치 받지 않도록 복무 관리에 신경 써 달라는 내용을 명시했다. 한 달 뒤에는 징계를 위해 집회 참가 교사들의 명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연가투쟁을 놓고 정부와 전교조 간의 소송전이 벌어진 사례도 있다. 2006년 11월 전교조는 성과상여금제도 시행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정부는 연가투쟁 참여 교사를 징계했다. 이에 불복한 교사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법원은 “연가투쟁 집회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단결권의 행사를 벗어난 행위이고, 수업권 침해를 막기 위한 교육부의 연가신청 불허 지시는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정부의 정책과 법률 적용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달라지면 안 된다, 원칙이 변하면 누가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 교장은 “정부가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지 않고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책임을 학교장에게 떠넘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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