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정확대 나선 정부, 세수 실탄 줄어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경기 부진을 우려한 정부가 ‘나랏돈 풀기(재정 확대)’에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이에 필요한 세수 확보에는 비상이 걸렸다.

국세 수입 4월까지 5000억 감소 #나랏돈 풀어 경기부양 비상 걸려 #증세 나서자니 소비 위축 우려

기획재정부가 11일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6월호)에 따르면 올해 1~4월 누적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5000억원 줄어든 109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연도별 국세 수입은 월간 지표 발표 이후인 2014년부터 계속 늘었지만 올해 들어 처음 감소하기 시작했다. 반면 정부 지출은 크게 늘었다. 1~4월 누적 총지출은 196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조원 증가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조가 올해 연말까지 지속하면 세수 감소로 계획된 재정 지출마저 여의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한 해 동안 걷으려고 목표한 세금 중 실제로 걷은 세금의 비율(국세 수입 진도율)도 크게 줄었다. 올해 1~4월 국세 수입 진도율은 37.1%로 전년 동기 대비 3.9%포인트 감소했다. 이 비율은 2016년 이후 40%를 꾸준히 넘겨 오다 올해에는 그 밑으로 떨어졌다. 최근 4년간 지속한 ‘세수 호황’이 올해 들어 사실상 끝났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징세 속도가 부진한 부문은 소득세와 법인세다. 진도율이 각각 3.3%포인트, 5.8%포인트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경제 성장 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소득 증가와 기업 혁신 강화→내수 증대와 기업 이익 증가→소득세·법인세 수입 증가→복지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추구했으나 목표와 달리 내수가 위축되고 기업 이익이 줄면서 계획한 세수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세·법인세 증가가 목표에 미달한 것은 그만큼 경제 성장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라며 “기존 경제 정책 방향을 수정하지 않으면 올해 말까지 경기 부진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 정책 수정보다는 확장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에 정책 역량을 쏟고 있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계정 기준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변경한 결과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8.2%에서 35.9%로 떨어진 것을 재정 여력의 근거라고 강조했다. 재정 확대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힘을 싣고 있다.

올해 1~4월 통합재정수지 25조9000억 적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문 대통령은 기획재정부가 내세운 재정 건전성 마지노선 ‘국가채무비율 40%’ 기준을 직접 문제 삼기도 했다.

문제는 세수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등 경기 하강 국면에선 세수 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난국을 타개하려고 재정 확대에 집중하고 있지만, 세수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면 국채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랏빚이 그만큼 더욱 늘어나는 것이다.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675조8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5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처럼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25조4000억원)를 기대할 수 없다 보니 재정 건전성 지표도 나빠지고 있다. 올해 1~4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25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수지)도 38조8000억원 적자를 나타냈다. 두 지표의 적자 폭은 월간 재정동향 발표 이후 가장 컸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악화한 재정 건전성 지표는 ‘재정 딜레마’에 빠진 정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확장 재정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에 나서자니 민간 소비 위축이 우려되는 ‘외통수’에 빠졌다는 의미다. 증세는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권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어 선택지에 넣기도 어렵다. 결국 국채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하면 민간에 풀린 자금을 정부가 흡수하게 돼 경기 활성화에 부정적 효과만 초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재정 확대에 의존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재정 중독’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장기 재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재정을 풀어도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저출산·고령화 진전으로 향후 세금 지출액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도 줄어들 수 있다는 심리가 시장 저변에 형성된 상황에서는 나랏돈을 풀어도 민간에선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세금을 100만원 걷으면 민간 소비는 125만원어치만큼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 재정을 동원해야만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역대 정부마다 매년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에만 골몰하다 보니 국가 재정 계획이 부실해지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정책이 아니라 생산성 위주의 경제 정책으로 세수 증대를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