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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약혼녀 살해범, 6년 전 검찰이 화학적 거세 청구했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7일 오전 A(36)씨가 범행 전 모자를 쓰고 피해자 아파트에 찾아가는 모습(왼쪽)과 옷을 갈아입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추락한 피해자를 옮기러 아파트에서 나가는 모습. [사진 전남지방경찰청]

지난달 27일 오전 A(36)씨가 범행 전 모자를 쓰고 피해자 아파트에 찾아가는 모습(왼쪽)과 옷을 갈아입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추락한 피해자를 옮기러 아파트에서 나가는 모습. [사진 전남지방경찰청]

순천에서 선배 약혼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정모(35)씨가 과거 성폭행 범죄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2013년 재판에서 정씨에 대한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재범 우려가 크지 않다”고 기각했다. 피해자 아버지가 정씨에 사형을 내려 달라고 쓴 청와대 국민청원 글에는 2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10일 법무부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는 2011년 7월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60건의 명령 결정이 있었다. 법원에서 명령을 내린 건 24건,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소인 공주 국립법무병원에서 심의위원회가 내린 명령은 36건이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 명령은 가석방처럼 치료를 약속하고 형 집행 전에 미리 내보낼 수 있는 제도다.

 명령 결정 60건 중 실제 집행된 건 39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12건은 이미 치료 기간이 끝났고 27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껏 60건의 명령이 나온 건 연간 7.5건 수준으로 결정이 내려졌단 거다. 법 제정 당시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가 연간 1200건(2008년 기준 1194건)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에 따라 명령 건수도 상당히 많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는데 결과는 전혀 다르다.

 판사 출신인 황일호 교수는 “요란했던 법 제정 과정에 비교하면 검찰이나 법원이 성충동 약물치료명령 청구나 판결에 지나치게 신중히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화학적 거세는 2007년 12월 혜진‧예슬양 살해 사건이 일어나면서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기 시작했다. 국회 내에서도 “약물 인체 주입은 인권침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제동이 걸렸으나 2009년 9월 조두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논의됐고, 2010년 초 김길태 사건과 김수철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하루 만에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전체회의, 본회의를 모두 통과해 법이 제정됐다. 2013년 3월부터는 성폭력 피해자의 연령 제한을 폐지해 적용하는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엔 화학적 거세를 명령 받은 성범죄자가 약물 투약을 끝까지 거부하다 다시 수감되는 사례도 처음 발생했다. 검찰은 지난해 13세 미만 청소년을 성폭행한 죄로 징역 5년을 살다가 출소한 신모(43)씨를 성충동약물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국립법무병원은 출소 전 약물 부작용 검사를 시도했지만 신씨가 끝까지 거부했고, 검찰은 출소하는 신씨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성충동약물치료법은 약물치료 지시에 성실히 응하지 않은 자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황일호 교수는 “재범 정도가 중한 성범죄자에 화학적 거세 명령을 구형할 수 있는 기준을 낮춰야하고 끝까지 거부하는 사례에 대비한 개정안도 나올 시기”라고 말했다.

화학적 거세에 쓰이는 약물은 남성호르몬 분비를 억제시키기 위해 여성 호르몬을 투입하거나 직접 남성호르몬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2주 동안 테스토스테론을 증가시켜 남성호르몬을 고갈시키는 원리를 가진 약물 류프롤리드 아세테이트가 주로 쓰인다. 다만 장기 투약할 경우 전신 무력감과 체중 증가, 발기부전과 골밀도 감소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때문에 투약과 함께 부작용 검사도 같이 진행된다. 신체에 손상이 발견된 경우 약물 투약을 일시 중단하고, 보호관찰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약물 치료 비용은 1인당 연간 400만~450만원 수준이다. 1회 15만원인 약물치료와 11만원인 심리치료를 매달 받아야 하며, 연 1~2회 부작용 검사도 해야는데 이는 회당 60만원 정도 소요된다. 병원에 갈 때마다 보호관찰관이 동행해야 해 인건비도 추가로 든다.

 화학적 거세는 독일‧덴마크‧스웨덴 등 유럽 8개 국가와 미국 캘리포니아‧플로리다 등 7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미성년자 성범죄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독일은 법으로 외과적 거세도 인정하고 있다. 유럽 인권단체들이 관련 법 폐지를 주장하지만, 독일 정부는 “연간 5건 미만으로 드물다”며 수용하지 않고 있다. 경찰 출신인 박상융 변호사는 “성범죄자 관리를 법무부에만 맡겨 두지말고 지자체와 경찰, 여성가족부가 함께 정보를 공유해 추가 범죄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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