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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급 공무원시험서 사회·과학·수학 빠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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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들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공무원 수험생들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이르면 2022년부터 9급 국가직 공무원 공채시험에서 선택과목 중 사회·과학·수학 등 고교 과목이 사라지고, 직렬에 따라 형법·세법 등 직무와 관련된 전문과목이 필수로 지정된다. 인사혁신처는 이같은 내용의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 선택과목 개편안'을 이달 안에 확정하고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9급 공무원 공채시험 '고교과목 선택제' 사실상 폐지 #일반행정 직렬 시험에서 1과목 유지 방안 검토 중 #'공딩족'만 늘었을 뿐, 고졸자 입직 효과는 미미해 #이르면 2022년 9급 공채시험부터 적용 #전문가들 "2012년 회귀는 문제, 전면 개편 필요" 지적

6일 인사혁신처는 "2013년 고졸자의 공직 진출 확대를 위해 9급 공채시험 선택과목에 고교과목을 포함시켰으나 실제 고졸자의 입직은 미미했다"면서 "오히려 신규 공무원의 업무관련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져 행정 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공무원에 대한 국민 신뢰를 잃고 있다"고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 업무와 직접 연관성이 있는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추가 지정해 신규 임용자의 전문성을 높일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교과목 선택제가 도입된 2013년 이후 18~19세의 9급 공채 응시인원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합격률은 제자리걸음이었다. 2012년 응시자가 1083명이었는데 제도 시행 첫해인 2013년에는 3261명, 2016년 4120명까지 늘었다. 올해는 2392명이다. 최종합격자 수는 2015년 6명, 2016년과 2017년은 3명, 2018년 10명으로 합격률이 채 1%도 안된다.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딩족'만 양산했을 뿐 실제 고졸 입직자를 늘리진 못했다는 의미다.

9급 공채 합격자의 업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세무직 9급 공무원은 민원인으로 세무사·회계사 등 전문가를 응대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공무원이 기본적인 법률 용어를 몰라 이들의 전화를 회피하고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민원이 잇따른다. 또 검찰직 9급 수사관이 ‘기소(형사사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긴다는 법률 용어)’란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는데, 선배가 이유를 묻자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랬다”고 대답한 사례도 있었다.

신인철 인사처 인재정책과장은 "9급 공무원의 업무 미숙에 따른 불편 민원 등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2016년부터 시험제도 개편을 꾸준히 준비해왔다"면서 "수차례 간담회·공청회 등을 통해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가 내놓은 개편의 큰 틀은 고교과목 선택제를 시행하기 전인 2012년 이전 시험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세무직의 경우 현재는 국어·영어·한국사가 필수과목이고 세법개론·회계학·행정학개론·사회·과학·수학 가운데 2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개편안에서는 국어·영어·한국사와 함께 세법개론과 회계학이 필수과목에 추가되고 선택과목이 없어진다. 검찰·교정·관세 직렬도 선택과목을 없애고 관련 법 과목 2개를 필수로 지정하는 방향으로 개편한다.

응시자가 가장 많은 일반행정 직렬의 개편방향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일반행정은 현재 국어·영어·한국사가 필수과목이고 행정법총론·행정학개론·사회·과학·수학 가운데 2과목을 선택한다. 개편안은 1안과 2안 두가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1안은 행정법총론과 행정학개론 중에 최소 1과목을 선택한다. 두 개를 할 수도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사회·과학·수학 중에서 한 과목을, 행정법과 행정학을 다 선택하면 사회·과학·수학을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과학·수학 중 두 개를 선택할 수 없다. 2안은 다른 직렬처럼 고교과목은 다 없애고 행정법총론과 행정학개론을 필수과목으로 넣는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올해 9급 공채시험 응시자 7202명과 일반인 3860명을 설문조사했다. 일반인 중 77.6%, 수험생 중 73%가 고교과목 선택제 폐지에 찬성했다. 신 과장은 "일반행정 직렬에서도  2안 찬성 비율이 높았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 시험 개편안

9급 공무원 시험 개편안

공딩족들은 이같은 제도 변화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 시험을 선택한 김모(19·서울 영등포구)군은 "지난 4월 국가직 9급 시험에서 필수과목인 국어·영어·한국사, 선택과목으로 사회·과학을 치렀는데 수능과 느낌이 비슷해 꾸준히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행정학과 행정법으로 바뀌면 생소한 내용이라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석(19·인천 서구)군은 "시험제도가 이렇게 바뀔 줄 알았으면 재수학원에 갔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스러워했다. 일반 수험생들도 "고교과목이 빠지면 난도가 올라가니, 제도 바뀌기 전에 합격하려는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 경쟁률이 더 높아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9급 공채시험 개편안에 대해 "고교과목 선택제 시행으로 행정서비스 수준이 저하되는 등 문제점은 분명하나, 2012년 방식으로 회귀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황성원 군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필수과목인 영어·한국사는 토익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공인인증시험으로 대체하고 면접 등을 강화해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과 소양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과 일반 사기업 종사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행정적 사고'이기 때문에, 기술직을 포함한 전 직렬 공채시험에 행정학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도 "공무원 공채 시험, 즉 고시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베트남에 불과하다"면서 "창의적 인재들이 공직에 몰려올 수 있도록 공무원 시험도 개방직 공개채용 등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는 갈수록 전문화·다양화되고 있는데, 공무원을 여전히 몇몇 과목 점수로 줄세워 선발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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