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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꽃’ 꺼질라...철강업계 10일 조업정지에 초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쇳물을 뽑아내는 작업(출선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쇳물을 뽑아내는 작업(출선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국내 철강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오염물질 배출 논란으로 전국 각지 제철소가 지방정부로부터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받고 있다. 철강업계는 적어도 2조원에 이르는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며 업계 특성에 맞는 정부의 행정방침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제철소 3곳, 조업정지 날벼락 

6일 철강업계, 한국철강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하순부터 지방정부가 제철소에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리거나 행정처분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는 지난 4월 24일 포스코의 광양제철소에 행정처분 사전 통보를 내렸다. 경상북도도 지난달 27일 포항제철소에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사전통지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달 30일 충청남도는 당진 현대제철에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확정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고로의 정비과정에서 나오는 흰색 연기다. 고로는 쇳물을 녹여내는 역할을 하는데 제철소에서는 45~60일 간격으로 고로를 정비하며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잠시 중단한다. 고온·고압 상태로 24시간 가동되던 고로에 뜨거운 바람이 유입되지 않으면 고로 내부 압력이 낮아진다. 이때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와 폭발할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증기를 불어넣는다. 고로 정비시 ‘블리더’라고 불리는 안전밸브를 열고 연기를 내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제철 제철소 전경. [사진 현대제철]

현대제철 제철소 전경. [사진 현대제철]

흰 연기가 뭐길래, 정부-업계 시각차 

이번 지방정부의 ‘연쇄 행정처분 사태’는 제철소 고로의 블리더에서 나오는 잔류가스를 바라보는 업계와 정부 사이의 시각차 때문에 벌어졌다. 블리더는 고로 폭발·화재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일 뿐 일상적인 오염물질 배출시설이 아니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블리더에서 배출되는 잔류가스는 대부분 수증기로,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가 포함돼 있지만 극히 소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2000cc 승용차를 하루 8시간 타며 총 10여일 동안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블리더에서 어떤 물질이 얼마나 나오는지 측정하지 않았던 것도 블리더가 오염물질 배출시설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한 제철소 환경담당부서 관계자 A씨는 “일정규모 이상의 오염물질 배출시설에는 법적으로 오염물질이 얼마나 나가는지 측정하기 위한 자동측정기기(TMS)를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블리더는 아니다”라며 “정비 시작 후 3~5분 사이 잔류가스에 오염물질이 포함될 가능성은 있지만 극히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조업정지에 대해 업계 노조도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지난 4일 “고로설비를 모르는 비전문가와 환경단체 등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현장에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라며 “성급한 행정처분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전경. [중앙포토]

포스코 광양제철소 전경. [중앙포토]

조업정지 피해액 천문학적 

고로가 10일 동안 가동을 멈추면 철강업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고로 내부 쇳물이 굳은 이후 재가동을 하려면 내화벽돌과 철피 등을 뜯어내는 수리과정을 거쳐야 해서다. 철강업계는 3~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제철 측은 고로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액이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계산했다. 포항, 광양 두 곳 제철소에 행정처분 사전 통보를 받은 포스코는 최소한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손정근 한국철강협회 기술지원본부장(상무) 상무는 “조업정지는 철강업계에는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는데 구체적으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처분이 내려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 철강업계 잘못

지방정부에서는 철강업계 잘못이 명백하다는 견해다. 환경부도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충남도 관계자는 “환경부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법적인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정부는 블리더를 열는 시기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블리더는 안전장치인만큼 고로 폭발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 ‘이상(異常) 공정’ 때만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로정비는 이상공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A씨는 “블리더는 폭발사고 직전에 열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여는 것”이라며 “미국, 유럽, 일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블리더를 열지 않고 위험한 환경에서 고로를 정비하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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