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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17화. 오크

중앙일보

입력

단순한 괴물에서 정의롭고 고결한 전사로

‘워크래프트’의 오크는 매력적인 전사의 모습으로 소개된다. 사진은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나오는 오크의 모습.

‘워크래프트’의 오크는 매력적인 전사의 모습으로 소개된다. 사진은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나오는 오크의 모습.

블리자드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입해 즐기는 대규모 온라인 게임 중 하나입니다. 같은 회사의 전략 게임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며 기존의 여러 판타지 작품의 영향을 받았죠. 엘프나 드워프, 오크나 트롤처럼 친숙한 종족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인간이나 엘프가 아니라 초록 피부에 험상궂게 생긴 괴물, 오크가 주인공처럼 소개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게임에는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도 등장하며,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이들을 선택해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나 언데드(죽었다가 되살아난 불사의 괴물)가 중심인 호드 군단, 그중에서도 오크를 선택하는 사람이 비교적 많은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일까요. 2016년에 만들어진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도 많은 종족이 등장하지만, 그중 오크족의 족장이 사실상 주역으로서 이야기를 펼쳤죠.

하지만 워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오크가 처음부터 주역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4년에 시리즈 최초의 게임 ‘워크래프트’ 때만 해도 그들은 단순한 침략자나 괴물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오크 대 인간’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는 오크를 선택해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계에 오크 군단이 습격해 와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매우 전형적인 판타지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워크래프트 2·3·와우를 거치면서 바뀐 것이죠. 워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오크는 침략자일 수는 있지만, 무조건 사악한 존재는 아니며, 정의롭고 고결한 인물도 존재하고, 때로는 인간들보다 선량하고 믿음직한 종족이죠. 그야말로 세계 전체의 주역을 담당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오크(Orc)는『호빗』과『반지의 제왕』을 그려낸 톨킨이 만든 존재입니다. 오크라는 이름은 영웅 서사시『베오울프』에 등장하는 오크나스라는 말에서 나왔어요. 베오울프의 적 중 하나인 좀비 모양의 괴물, 그렌델의 종족을 부르는 이름으로 ‘오르크스의 시체’라는 뜻이죠. 오크나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저승신 하데스(플루토)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 ‘저승신의 시체족’ ‘저승신의 족속’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그래선지『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오크는 그렌델처럼 추악한 외모와 시체처럼 회색빛 피부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인간·엘프 같은 이들에 대한 증오심과 욕심으로 가득한 괴물, 창조는 할 수 없고 오직 파괴만 일삼는, 좀비나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반지의 제왕』에서 오크는 사우론이 이끄는 악의 군단의 주역을 맡습니다. 배신한 마법사 사루만은 오크를 개조하여 우르크하이라는 존재를 만들지만, 이 역시 악의 군단이라는 것은 차이가 없죠. 추하고 사악하며 보통 인간보다 조금 강한 괴물.『반지의 제왕』의 오크는 사실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반지의 제왕』이 인기를 끌면서, 오크 역시 판타지의 중요한 존재로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던전&드래곤’을 시작으로 무수한 작품에서 오크를 가장 기본적인 괴물로 등장시켰기 때문이죠. ‘던전&드래곤’의 오크는 톨킨의 그것과 달리 멧돼지 비슷한 얼굴로 묘사됩니다. 아일랜드어의 orc가 ‘돼지’를 뜻하기 때문인데, 그래선지 ‘드래곤 퀘스트’ 같은 게임에선 아예 팔다리가 달린 멧돼지처럼 그려지기도 하죠.

흥미로운 것은 ‘던전&드래곤’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오크를 단순히 사악한 괴물, 엘프가 타락한 존재라고 설정하지 않고, 야만적·폭력적인 종족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톨킨의 오크는 사악한 존재가 만든 괴물이지만, 다른 작품의 오크는 원래부터 그런 종족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던전&드래곤’에서는 플레이어가 오크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도 있어요.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거대한 전쟁 이야기를 다룬 게임, ‘워해머 40000’에서 오크는 초록 피부에 지능은 조금 낮지만, 호전적이고 독자적인 문명을 지닌 종족으로 설정합니다. 버섯처럼 자라나며 우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전쟁을 계속하는 녹색 침략자.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자폭도 서슴지 않는 전투 종족. ‘워크래프트’의 오크는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가 인기를 끌면서 개발자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크를 ‘단순한 침략자로 끝내도 되는 걸까’라고 말이죠. 그래서 미국 원주민(인디언)의 모습을 빌려 샤머니즘을 숭배하는 고결한 전사 종족으로 그려내게 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오크는 바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오크는 톨킨이 창조한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 원전은 전설이나 설화에 나오는 좀비 같은 괴물이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을 본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오크를 상상하고 만들어냈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형태의 오크가 판타지 작품을 수놓게 되었죠. 전설에서 시작하여 톨킨을 거쳐 와우까지 펼쳐진 오크 이야기. 판타지는 신화나 전설에서 시작했지만, 창작자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글=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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