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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이의 일기]내겐 너무 큰 수박...1인용 ‘소(小)박’이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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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애플수박, 소(小)박이의 일기

논산에서 애플수박을 재배하는 전영식(53)씨의 모습. 전 씨는 애플수박을 재배하기 시작한지 5년이 됐다. [사진 이마트]

논산에서 애플수박을 재배하는 전영식(53)씨의 모습. 전 씨는 애플수박을 재배하기 시작한지 5년이 됐다. [사진 이마트]

 내 이름은 애플수박. 껍질이 얇아 사과처럼 깎아 먹을 수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 수박의 4분의 1 크기로 성인 남성이 한 손으로 가뿐히 나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원래 고향은 아프리카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아열대 식물인 나는 이제 한국에서도 잘 자란다.

지난 2월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난 나는 오는 7월 서울로 떠난다. 서울 여행이 걱정되지만, 주인아저씨는 요새 내가 인기니 걱정하지 말란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서 나처럼 작은 수박, 즉 '소(小)박'을 많이 찾는단다.

한국의 1인가구 수는 2010년 417만명에서 2017년 561만명으로 급증했다(통계청). 마트는 이들을 노린 반쪽, 4분의 1쪽 수박을 내놓아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해 작게 자른 수박 매출이 전년보다 160%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 덕에 소박인 우리도 인기다.

애플 수박과 성인 남자의 주먹과 비교한 모습. 애플수박은 사과처럼 껍질이 얇아 쉽게 칼로 깎아 먹을 수 있다. [사진 이마트]

애플 수박과 성인 남자의 주먹과 비교한 모습. 애플수박은 사과처럼 껍질이 얇아 쉽게 칼로 깎아 먹을 수 있다. [사진 이마트]

수박은 혼자 사는 사람에겐 비싼 과일이다. 혼자 먹기엔 양이 많고 음식물쓰레기도 많이 나와 치우기도 번거롭다. 내가 사랑받는 이유도 껍질이 얇고 크기도 작아 남길 걱정이 덜해서다. 가격도 일반수박이 1만4000~1만9000원이지만 나는 6000원 정도다.

사실 난 좀 말썽꾸러기다. 수박 수확을 돕는 일꾼들은 나만 보면 손사래를 친다. 일반 수박과 다르게 나는 주렁주렁 천장에 매달려있어서 수확이 더 힘들어서다. 천장에 달린 나를 따려면 허리가 남아나질 않는다. 내 몸의 크기가 적당히 자라도 익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꾸준히 날 봐준 사람이 아니라면 익은 것을 골라내기도 어렵다. 논산의 비닐하우스에서 나를 키워주신 전영식(53)씨는 내 손자를 더 키울 계획이다. “손이 많이 가더라도 애플수박이 일반 수박보다 20~30%정도 매출이 높은 편”이란다.

더 고백하자면 나는 수확뿐만 아니라 재배도 힘들다. 1년에 세 번을 수확할 수 있는 일반 수박과 달리 나는 1년에 한 번 2~7월까지 살다 간다. 한철 수확에만 5개월 걸리니 병충해와 습해에 걸릴 수 있는 확률도 높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달콤할 수 있는 이유도 일 년에 딱 한 번만 재배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어깨에 힘줄만 하지 않을까.

수박 고르는 팁을 주자면 말이지…

사람들은 수박의 당도가 복불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수박 맛의 편차는 가장 크게 1모작(한번 재배)과 2모작(두 번 재배) 수박 사이에서 발생한다. 2모작 수박은 연이은 재배로 당도가 1~2도 더 낮다. 6월이 되면 초저가로 등장하는 ‘미끼 수박’이 대부분 2모작 수박이다. 나는 한 철 한 번 재배하는 1모작이기 때문에 달 수밖에 없다. 미끼 수박과 비교하면 불쾌하다.

블랙망고 수박의 모습. 과육이 망고처럼 노랗고 식감도 일반 수박에 비해 부드럽다. 당도 12브릭스로 일반 수박에 비해 달다. [사진 이마트]

블랙망고 수박의 모습. 과육이 망고처럼 노랗고 식감도 일반 수박에 비해 부드럽다. 당도 12브릭스로 일반 수박에 비해 달다. [사진 이마트]

나는 부여에 친구가 있다. 블랙망고 수박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좀 더 길쭉한 럭비공처럼 생기고 무게는 5kg 이하다. 일반 수박보다 까만 껍질에 과육은 망고처럼 노랗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고처럼 실제 식감이 일반 수박보다 더 부드럽다. 이 친구는 ‘인증용’ 사진에 최적화돼 있어서 요즘 인기다. 젊은 친구들이 자주하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딱 좋은 멋진 녀석이다.

이국적인 생김새의 블랙망고 수박은 고향이 동남아다. 신기하게도 동남아의 블랙망고수박과 한국의 블랙망고수박은 맛이 다르다. 고창에서 내 친구를 키우고 있는 김원회(66)씨는 "동남아보다 한국에서 자란 블랙망고 수박이 더 달다"고 했다. 동남아는 비가 많이 와 물맛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고창에서 블랙망고수박을 재배하는 김원회(66)씨의 모습. 김씨는 "수확기가 다가오자 산에서 내려오는 너구리들이 블랙망고수박을 파먹기도 한다"며 "병해에 너구리까지 신경쓰느라 정신없다"고 전했다. [사진 이마트]

고창에서 블랙망고수박을 재배하는 김원회(66)씨의 모습. 김씨는 "수확기가 다가오자 산에서 내려오는 너구리들이 블랙망고수박을 파먹기도 한다"며 "병해에 너구리까지 신경쓰느라 정신없다"고 전했다. [사진 이마트]

소박이를 소비자 품에 안겨줄 이마트 관계자는 “올해 블랙망고수박을 10만통가량 매입할 예정으로 액수로 환산하면 10억원에 달하는 물량”이라고 한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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