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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교육 받은 北 남성 평양서 20여 매장 편의점 체인 성공”

중앙일보

입력

“북한 사람들은 모두 세뇌됐을 거라는 생각이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비정부기구(NGO) ‘조선익스체인지’의 제프리 시(Geoffrey See·34) 대표가 북한 사람들도 경제 활동을 중시한다며 꺼낸 말이다.

북한 주민 창업 지원 NGO ‘조선익스체인지’ #와튼 스쿨 출신의 제프리 시 대표 인터뷰 #"출퇴근 맞춰 7∼22시로 영업 연장이 비결" #10년 간 북한 주민 2600명 창업 교육 #“느리고 점진적이지만 분명한 변화”

북한 창업자들을 돕는 싱가포르 NGO '조선익스체인지'의 대표 제프리 시. [연합뉴스]

북한 창업자들을 돕는 싱가포르 NGO '조선익스체인지'의 대표 제프리 시. [연합뉴스]

시 대표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생겔랑 국제 심포지엄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사람들은 모두 세뇌됐고 창의적 경제 활동에 관해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편견”이라고 말했다.

조선익스체인지는 시 대표가 2010년 설립한 비정부기구다. 이 단체는 창립 후 약 10년 동안 해외 대학의 경제학 교수, 변호사 등을 포함한 1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을 북한으로 데려가 북한 주민 2600여 명에게 창업 교육을 제공했다. 역으로 북한 주민 100명 정도가 이 단체의 도움을 받아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창업 연수를 했다.

시 대표 본인도 지난 2009년부터 40차례 이상 북한을 찾았다. 싱가포르 출신인 시 대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을 다니던 2007년 평양을 방문해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북한 대학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2010년 ‘조선익스체인지’를 만들었다.

평양에서 워크숍을 진행 중인 조선익스체인지의 봉사자들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 [사진 조선익스체인지]

평양에서 워크숍을 진행 중인 조선익스체인지의 봉사자들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 [사진 조선익스체인지]

조선익스체인지가 평양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선 마케팅 전략, 창업을 위해 알아야 할 법 지식, 해외 기업인들의 성공 사례 등이 소개된다. 단순히 강의를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엔지니어들을 봉사자로 참여시켜 시제품을 만들고 판매 과정을 모니터링 하는 등 창업 전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북한 주민들의 연령대는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성공 사례도 있다. 시 대표는 “2017년부터 창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서지 프로텍터(전력선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 기계가 오작동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를 만들어 판매한 40대 후반 북한 남성은 초기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고, 남는 수익으로 8명의 직원을 고용했다”며 “중국 제품보다 가격이 싸고 애프터서비스가 가능한 점 등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워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조선익스체인지를 거쳐 간 북한의 ‘기업가’ 중에는 평양에 20여 개의 편의점 체인망을 설립한 사람도 있다. 시 대표는 “이 남성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던 편의점 운영 시간을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오전 7시에서 오후 10시까지로 확장했다”며 “기초적 변화지만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공략하는 경영 개념이 북한에 보급됐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이들의 활동은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등 외부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시 대표는 “미사일 발사 등 악재가 터질 때마다 펀딩이 줄어든다”며 “특히 기부를 하는 기업들은 주요 미국인‧일본인 주주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경제 제재 국면에선 기부금을 급격히 삭감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통제된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이 싹트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 대표는 낙관적이다. 시 대표는 “모든 것을 일시에 180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베트남과 싱가포르 등 1당 체제에서 경제를 발전시킨 사례들은 있다. 느린 속도지만, 북한은 분명히 개방하고 있으며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겔랑=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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