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무조건 만나자" 말 떨어지기 무섭게...스텝 꼬인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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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9일 오후 6시 8분, 총리관저를 나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납치문제 논의 도중 '북한 미사일' 소식 접해 #"탄도미사일 안보리 위반"이라면서도 비난 자제 #"다시 압력노선 갈 수 없어. 약점 잡혔다" 비판도

아베 총리는 직전에 이시카와 세이치로(石川正一郎) 내각관방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장과 면담을 마친 상태였다. 아베 총리는 이시카와 사무국장과 납치문제를 논의하던 중이거나, 논의를 마친 직후 북한의 추가 미사일 발사 소식을 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비행체 발사 정보가 있는데,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묻는 기자들에 질문에 아베 총리는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영향이 있을만한 사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서둘러 관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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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정상회담을 의욕있게 추진하려던 아베 총리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지난 2일 아베 총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없이 만나겠다”고 한 지 이틀만에 북한이 수십발의 발사체를 쏜 데 이어, 다시 5일만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특히 북한이 추가로 미사일을 발사한 9일은 마침 북·일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물밑 작업으로 납치문제 담당상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방미길에 오른 날이었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태는 아니다”라면서 말을 아끼고있지만, 집권 후반기 북·일정상회담 개최와 납치문제 해결로 점수를 따려던 아베 총리에겐 ‘예상 밖의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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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에 직접적인 비판을 삼간 채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사일 발사 직후 기자들 앞에 선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은 “북한이 5일만에 발사체를 발사한 의도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북한의 의도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1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쏜 것은)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보인다. 유엔안보리 결의에 명백히 위반한다”며 미국과 보조를 맞추었지만, 그 이상의 비난은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서 ‘조건없는 북·일정상회담’을 직접 제안한만큼, 일단은 북측의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방미 중인 스가 관방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조건 없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에 위반되는 탄도미사일임을 공식표명함에 따라,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이 거세질 경우 아베 총리의 북·일정상회담 구상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원칙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국난(国難)’으로까지 규정하며 북한을 압박했던 아베 정권이 이번 미사일 발사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원칙이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TV아사히는 “북한에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새로운 카드’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와서 아베 총리가 다시 압력노선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완전히 약점이 잡혀버렸다”고 지적했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정부가 북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9일 열린 자민당 국방 합동부회에서 지난 4일 북한의 발사체에 대한 분석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시간이 지나치게 걸리고 있다. 발사체라는 표현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정부 관계자가 “한국, 미국의 정보와 맞춰가면서 대응하고 있다”고 해명을 하는 도중, 북한의 추가 발사체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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