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오후(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 고려극장.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을 5일 앞두고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몇몇 직원들은 주변 정리와 내부 청소를 하기 위해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부지런히 극장 앞을 오갔다. 고려극장은 일제강점기 때 홍범도(1868~1943·사진) 장군이 경비로 일하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대통령 지난달 카자흐스탄 방문서 #홍 장군이 일했던 고려극장 둘러봐 #정상회담선 유해 한국봉환 요청도 #광주광역시에 항일전시관 개관 #고려인 투쟁, 홍범도 유물 등 전시
홍 장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카자흐스탄 땅에서 숨을 거뒀다. 현재 그의 무덤은 알마티에서 1100㎞가량 떨어진 크즐오르다에 있다. 당시 그곳에 있던 고려극장은 1968년 알마티로 이전한 뒤 지난해 6월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고려극장 측은 지난달 21일 문 대통령 방문 때 홍 장군을 주제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1932년 연해주에서 창단된 고려극장은 87년간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한해 80여 차례에 걸친 한국어 연극과 뮤지컬·콘서트 등을 통해 교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려극장은 홍 장군이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37년 옛 소련이 강제이주 정책을 펼칠 당시 연해주에서 떠나온 장군은 크즐오르다에서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고려극장 측은 그가 타계하기 1년 전인 42년 극작가 태장춘(1911~1960)이 희곡을 쓴 연극 ‘홍범도’를 본인 앞에서 공연했다. 홍 장군의 순국 75주기인 지난해 10월에는 원작을 개작한 작품을 다시 무대 위에 올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알마티에서 동포 간담회를 가진 뒤 곧바로 고려극장을 찾았다. 카자흐스탄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앙아시아 교포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공간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문제를 논의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고려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한인들을 말한다. 37년부터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후 극심한 차별대우 속에서 궁핍한 삶을 살았다. 고려인 3세인 장니나(67·여)씨는 “한국 대통령이 처음 알마티에 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대통령 일행을 위해 한국 노래와 율동을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홍 장군은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50여년간 조국 해방을 위한 무장 투쟁에 투신했다. 평양 출신인 장군은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을 섬멸한 ‘봉오동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1개 여단을 격퇴했다. 당시 일본군이 그를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움에 떤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광주광역시에서는 홍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항일투쟁을 기념하기 위한 역사유물 전시관이 최근 개관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2동행복센터 2층에 문을 연 기념관에는 홍 장군의 사진과 유물 등을 볼 수 있다. 전시관에는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경천 장군의 부부 사진과 일기장인 ‘경천아일록’ 등 고려인들의 항일 자료 100여점이 전시 중이다.
이중에는 홍 장군의 손녀인 홍에까쩨리나(1925년생)씨가 문 대통령에 앞서 94년 유해봉환 요청을 한 자료도 포함돼 있다. 당시 홍씨는 “할아버지 유해를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카자흐스탄 내 크즐오르다 중앙묘역 관리소장에게 청원서를 보낸 바 있다.
알마티=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