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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묻힌 ‘청산리 대첩’ 홍범도 장군, 고국 돌아올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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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행복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홍범도 장군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 곳에는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손녀의 청원서 등이 전시 중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행복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홍범도 장군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 곳에는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손녀의 청원서 등이 전시 중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16일 오후(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 고려극장.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을 5일 앞두고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었다. 몇몇 직원들은 주변 정리와 내부 청소를 하기 위해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부지런히 극장 앞을 오갔다. 고려극장은 일제강점기 때 홍범도(1868~1943·사진) 장군이 경비로 일하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대통령 지난달 카자흐스탄 방문서 #홍 장군이 일했던 고려극장 둘러봐 #정상회담선 유해 한국봉환 요청도 #광주광역시에 항일전시관 개관 #고려인 투쟁, 홍범도 유물 등 전시

홍 장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카자흐스탄 땅에서 숨을 거뒀다. 현재 그의 무덤은 알마티에서 1100㎞가량 떨어진 크즐오르다에 있다. 당시 그곳에 있던 고려극장은 1968년 알마티로 이전한 뒤 지난해 6월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고려극장 측은 지난달 21일 문 대통령 방문 때 홍 장군을 주제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1932년 연해주에서 창단된 고려극장은 87년간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한해 80여 차례에 걸친 한국어 연극과 뮤지컬·콘서트 등을 통해 교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홍범도

홍범도

고려극장은 홍 장군이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37년 옛 소련이 강제이주 정책을 펼칠 당시 연해주에서 떠나온 장군은 크즐오르다에서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고려극장 측은 그가 타계하기 1년 전인 42년 극작가 태장춘(1911~1960)이 희곡을 쓴 연극 ‘홍범도’를 본인 앞에서 공연했다.  홍 장군의 순국 75주기인 지난해 10월에는 원작을 개작한 작품을 다시 무대 위에 올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알마티에서 동포 간담회를 가진 뒤 곧바로 고려극장을 찾았다. 카자흐스탄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앙아시아 교포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공간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홍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문제를 논의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고려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한인들을 말한다. 37년부터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후 극심한 차별대우 속에서 궁핍한 삶을 살았다. 고려인 3세인 장니나(67·여)씨는 “한국 대통령이 처음 알마티에 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대통령 일행을 위해 한국 노래와 율동을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홍 장군은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50여년간 조국 해방을 위한 무장 투쟁에 투신했다. 평양 출신인 장군은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을 섬멸한 ‘봉오동 전투’의 승리를 이끌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1개 여단을 격퇴했다. 당시 일본군이 그를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 부르며 두려움에 떤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광주광역시에서는 홍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항일투쟁을 기념하기 위한 역사유물 전시관이 최근 개관했다. 광주 광산구 월곡2동행복센터 2층에 문을 연 기념관에는 홍 장군의 사진과 유물 등을 볼 수 있다. 전시관에는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경천 장군의 부부 사진과 일기장인 ‘경천아일록’ 등 고려인들의 항일 자료 100여점이 전시 중이다.

이중에는 홍 장군의 손녀인 홍에까쩨리나(1925년생)씨가 문 대통령에 앞서 94년 유해봉환 요청을 한 자료도 포함돼 있다. 당시 홍씨는 “할아버지 유해를 한국으로 보내달라”며 카자흐스탄 내 크즐오르다 중앙묘역 관리소장에게 청원서를 보낸 바 있다.

알마티=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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