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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차라리 ‘검찰 권력’을 쪼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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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1. 검찰 권력 키운 건 ‘검찰 중독’이다.

개혁의 핵심은 비대한 권한 분산 #‘수사·기소권 분리’ 정공법 택해야

‘옷 벗겠다는 검찰총장, 아이고 무서워라. 식상한….’ 2011년 7월 5일 오마이뉴스 김갑수 기자의 기사 제목이다. 당시 김준규 총장이 국회의 수사권 조정안 가결에 반발해 사퇴한 것을 다룬 기사였다. 지난 4일 문무일 총장은 해외출장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한 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 이렇게 개혁의 북소리가 울릴 때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국민 기본권”을 강조하는가. 그 진정성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이런 검찰을 만든 건 한국 정치다. 문 총장이 귀국한 날, 자유한국당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충돌과 관련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한국당 의원들을 무더기로 고발했다. 이제 수사권을 조정해야 할 여야 의원들이 그 대상인 검찰에서 줄줄이 조사받게 생겼다. 검찰 중독을 끊겠다는 각오 없이 개혁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2. 개혁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한국 사회에서 개혁을 진행하다 보면 애초에 왜 그 개혁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린다. 출발은 검찰을 못 믿겠다는 것이었다. ‘어벤져스’급 검찰권 위에서 검사들이 검사장,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코피 터지는 인정 투쟁을 벌였다. ‘표적 수사’ ‘별건 수사’ ‘먼지털이 수사’가 그 후유증이었다. 개혁의 핵심은 검찰이 틀어쥔 권한들을 어떻게 분산하느냐였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을 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경찰 수사지휘권, 영장 청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중 수사지휘권만 사라진다. 그 결과 경찰은 비대한 정보 기능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게 된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도입되면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기관은 하나 더 늘어난다.

3. 나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부패범죄, 공직자 범죄, 경제·금융범죄, 선거범죄…. 검찰은 기존의 특수수사를 그대로 하게 된다. ‘얘기되는 수사’는 계속 가지고 가는 거다. 진경준, 홍만표, 우병우가 누비고 다녔던 그 마(魔)의 삼각지대는 무사하고, 검찰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강한 검찰’에 ‘강한 경찰’ ‘강한 공수처’를 맞세우는 꼴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경쟁의 원리’다. 영장 경쟁, 기소 경쟁에 충성 경쟁까지 더해질 가능성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인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검찰은 왜 불신하는지 알겠는데, 경찰의 양심, 공수처의 양심은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정확한 답이 제시되어야 한다. 잘못하면 ‘좋은 놈’은 없고 ‘나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나올 수 있다. 비슷한 제목의 영화 포스터 문구는 이러했다. ‘딱 한 놈만 살아남는다!’

4. 개혁은 덧셈 아닌 뺄셈으로.

패스트트랙 지정은 논의의 시작일 뿐이다. 본회의 상정까지 최단 180일, 최장 330일의 시간이 있다. 논의가 강제된 만큼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나는 ‘검찰 이분지계(二分之計)’를 말하고 싶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자. 어렵지 않다. 검사들이 ‘수사청’ ‘공소청’으로 헤쳐모이면 된다.

공소청 검사들은 어떻게 하면 무죄를 적게 받을지 고민할 것이다. 수사청 검사들이 수상한 사건을 가져오면 쿨하게 말할 것이다. “이 사건요? 유죄 받기 어렵겠는데요. 저는 기소 못합니다.”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를 연상하면 될 터. 지금처럼 검사가 진단(수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수술(재판)받아 보겠다”며 영장 치고 기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경찰 정보 파트와 수사 파트도 분리하자. 나누고 쪼개서 청와대의 지시 한마디, 실세의 전화 한 통에 컨트롤되지 않도록 하는 게 견제와 균형의 핵심이다. 문 총장이 진짜 법률가라면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의 오만한 모습에 실망하셨을 국민 앞에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희의 권력이자 무거운 멍에였던 권한들을 분산해 주십시오. 앞으론 수사지휘권 갖고 장난치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정말 잘해보겠습니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