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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임종한의 디톡스(23)

원자번호 28번의 원소 이름인 니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어 왔다. [중앙포토]

원자번호 28번의 원소 이름인 니켈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어 왔다. [중앙포토]

원자번호 28번의 원소 이름인 니켈(nickel)은 광석으로부터 처음 분리∙발견한 것은 1751년에 이르러서이지만, 오래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어 온 금속이다. 니켈의 약 65%는 내부식성인 스테인리스강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스테인리스강은 단단하고 부식이 잘되지 않는 철의 합금으로 자동차나 전자 제품, 식기 및 주방기구, 건축 부품, 전력 케이블, 화학 공업 시설의 재료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또한 니켈 도금은 여전히 많이 사용되는 부식 방지 방법이다. 인류는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니켈-철로 이루어진 철 운석을 써서 여러 니켈 합금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니켈은 니켈-카드뮴 2차 전지, 안료, 수소화 반응 촉매 등 첨단산업에서 이르기까지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니켈은 생물학적인 역할도 수행하는데, 요소가수분해효소, 아르기나아제, 아미노산탈카르복실화효소, 호스포글루코뮤타아제, 아세틸CoA합성효소, 피루브산산화효소, 티아민피로인산인사화효소, 피리독살인산화효소 등의 효소가 니켈에 의해 활성화된다. 또한, 니켈은 유전물질 중 하나인 RNA 내에서 핵산 구조의 안정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켈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사람에게서 암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으며, 여러 가지 니켈 화합물들이 사람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켈이 분명한 1급 발암물질로 작용하는 것은 분진 형태의 흡입 노출 시에 관련된 것으로 니켈의 ▲용량 ▲노출 기간 ▲흡입, 음용 등 '노출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유해성의 정도는 매우 다르다. 니켈 함유 분진 노출시 암 발생 위험도가 높지만, 니켈에 오염된 음용수를 통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니켈은 여러 사람에게 알레르기성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니켈이 들어있는 흰색 동전의 사용이나 반지, 귀걸이 등 장신구의 착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니켈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노출에 의한 반복 노출은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다.

니켈 주화와 니켈-카드뮴 전지. 니켈은 동전, 건전지, 장신구 등 일상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니켈에 자주 노출되면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다. [pixabay, 중앙포토]

니켈 주화와 니켈-카드뮴 전지. 니켈은 동전, 건전지, 장신구 등 일상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니켈에 자주 노출되면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발생할 수 있다. [pixabay, 중앙포토]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니켈에 노출되면 기관지 부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가져와 천식을 유발하는데, 호흡이 짧아지고 기침이 나며 쌔근거리는 소리와 가슴 압박 등의 증상을 나타내고, 폐 기능을 감소시킨다. 이 밖에도 고농도 니켈에 단시간 노출되면 눈과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으며,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노출되는 경우, 신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발암성 금속으로 니켈은 후성유전을 통해 심혈관 질환, 신경학적 후유증, 행동 발달 장애, 고혈압 위험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되었으며, 니켈은 자가면역의 위험요인으로 만성 피로 증후군, 섬유 근육통, 알 수 없는 원인의 신경계 증상 유발 등과 관련 있다고 보고되었다. 또 니켈은 산화스트레스를 통해 간과 신장에 독성을 미친다. 니켈 음용은 생식 기능에 독성을 미칠 수 있으며, 니켈은 생식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금속이온으로 불임, 유산, 기형아 출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 얼음정수기 결함으로 시민들이 발암성 중금속 니켈에 수년간 노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얼음정수기에 니켈 도금이 벗겨져 소비자들이 니켈에 오염된 음용수를 먹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해당 기업은 소비자에게 이를 제때 알리지 않았다.

모 정수기 회사 제품 내부에서 반짝이는 금속 가루가 보였다. 알고보니 이 이물질은 니켈 도금이 벗겨진 것이었고, 여기에는 니켈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pakutas]

모 정수기 회사 제품 내부에서 반짝이는 금속 가루가 보였다. 알고보니 이 이물질은 니켈 도금이 벗겨진 것이었고, 여기에는 니켈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pakutas]

니켈에 시민들이 노출되었는지, 건강영향이 어떠한지 정부는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피해소송과정에서는 일부 재판부에서는 소비자피해를 인정했고, 일부에서는 시민들에게 노출과 피해의 증거가 없다고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놀라운 것은 일부 재판부에서는 해당 기업조차 인정한 “시민들이 정수기 결함으로 니켈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민법상 소비자의 환경피해를 다루는 데에 소비자와 기업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상태에서,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피해입증에 대해 과다한 요구를 하고 있다. 재판부는 니켈 노출과 피해질환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물어 결과적으로는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런 것이 사법적인 정의인가?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할 환경부는 이 사건에 대해서 뒷짐을 지고 있다.

정수기를 사용한 사람들이 있고, 건강보험자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면, 그 피해를 밝히는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다. 시민들에게 여러 형태의 환경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현재의 재판부와 정부의 태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소비자피해를 방기하는 셈이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요원한 것으로, 기업과 정부, 재판부가 시민들의 건강피해를 야기한 무책임한 기업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묻는 데에 이젠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나? 어떻게 가습기 살균제로 그 많은 시민의 피해를 보고서도 달라진 것이 없나?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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