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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씌우면 전기차가 된다?…사활 건 전기차 플랫폼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9 상하이 국제모터쇼’에서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전용 ‘MEB(Modulare E-Antriebs-Baukasten)’ 플랫폼을 기반으로 내년부터 연간 6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9 상하이 국제모터쇼;에서 폴크스바겐이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룸즈' 컨셉트카를 소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중국 완성차 업체들에 전기차 전용 MEB 플랫폼을 공급해 내년부터 60종의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AP=연합뉴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9 상하이 국제모터쇼;에서 폴크스바겐이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ID.룸즈' 컨셉트카를 소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중국 완성차 업체들에 전기차 전용 MEB 플랫폼을 공급해 내년부터 60종의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AP=연합뉴스]

이 차에는 폴크스바겐의 VW 로고가 달리는 게 아니다. 폴크스바겐의 중국 합작사인 상하이기차(SAIC)와 이치기차(FAW)가 MEB 플랫폼을 이용해 전기차를 개발·생산한다. 지금까지 완성차 업체가 개발비용을 줄이기 위해 플랫폼을 공유한 적은 있지만, ‘오픈 플랫폼’으로 제공되는 건 MEB가 처음이다. 폴크스바겐이 엄청난 돈을 들여 개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다른 완성차 업체에 제공하는 건 미래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플랫폼은 자동차의 기초 뼈대 역할을 하는 기본구조다. 최근에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여러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는 ‘모듈러’ 방식이 대세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해치백 모델까지 만들 수 있다. 개발비용을 아끼고 부품을 공유할 수 있어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내연기관 자동차에 모듈러 플랫폼을 적용해 재미를 봤다.

지난해 9월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이 전기차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이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사진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의 전기차전용 플랫폼 MEB의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 [사진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전용 MEB 플랫폼. 오픈 플랫폼 방식으로 개발돼 다른 완성차 업체도 이 플랫폼을 제공받아 전기차를 쉽게 개발할 수 있다. [사진 폴크스바겐]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필요한 건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는 구조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의 엔진룸이나 변속기, 구동축 같은 부품이 필요 없는 대신, 바닥에 배터리 팩이 들어갈 자리가 필요하고 앞뒤에 전기모터가 놓일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예컨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차의 전기 SUV ‘코나 일렉트릭’은 내연기관 플랫폼을 바탕으로 제작돼 엔진룸 공간은 남고 플로어(차체 바닥)는 내연기관차보다 높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하면 전기차에 맞는 효율적인 설계가 가능해진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선두주자는 미국 테슬라다. 전기차 업체로 시작한 테슬라는 전기차용 플랫폼만 갖고 있다. 내년 출시 예정인 유틸리티차량 ‘모델Y’는 이런 구조 덕분에 중형 SUV 크기지만 넉넉한 7인승의 탑승공간을 뽑아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지난 3월 공개한 '모델 Y'.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덕분에 작은 차체에도 넉넉한 7인승의 탑승공간을 만들 수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지난 3월 공개한 '모델 Y'.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덕분에 작은 차체에도 넉넉한 7인승의 탑승공간을 만들 수 있다. [AP=연합뉴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9월 ‘일렉트릭 포 올(Electric For All)’ 전략을 선포하고 전기차 회사로 변신을 선언했다. MEB 플랫폼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55종, 150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올 초엔 계획을 변경해 70종, 2200만대로 확대했다. 이 같은 배경엔 ‘오픈 플랫폼’ 방식의 사업 전략이 숨어있다.

이른바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aaS·Mobility as a Service)’ 시대의 전략이다. 그룹 산하 브랜드뿐 아니라 다른 완성차 업체에 MEB를 제공해 ‘플랫폼 사업자’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와 애플이 운영체제(OS) 플랫폼을 제공하고, 제조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미래 차 시장의 또 다른 축인 자율주행 분야에서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는 구글(웨이모), 바이두(아폴로), 인텔·모빌아이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드웨어’ 격인 전기차 플랫폼마저 뺏길 경우 ‘조립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플랫폼 전쟁에 나선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인 GM은 새 전기차 플랫폼인 EV3를 이용해 2021년 고급차 브랜드인 캐딜락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캐딜락]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인 GM은 새 전기차 플랫폼인 EV3를 이용해 2021년 고급차 브랜드인 캐딜락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캐딜락]

 전기차 볼트와 자율주행 플랫폼 ‘크루즈’로 미래 차 시장 경쟁에 나서고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3세대 전기차 플랫폼인 ‘EV3’를 기반으로 2021년 새 전기차를 출시한다. GM은 2023년까지 EV3 플랫폼을 기반으로 20종의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인데, 첫 전기차는 고급차 브랜드인 캐딜락에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스티브 칼라일 캐딜락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캐나다 오토모티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캐딜락은 GM 브랜드 최초로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19’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Electric Global Modular Paltform)’을 선보였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E-GMP를 기반으로 한 첫 양산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후륜구동 기반인 MEB와 달리 4륜구동 기반이며 최근 세계 자동차 시장 대세인 SUV에 최적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1월 'CES 2019'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와 모빌리티 시대의 디자인 철학인 '스타일 셋 프리'를 선보였다.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자동차는 실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1월 'CES 2019'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와 모빌리티 시대의 디자인 철학인 '스타일 셋 프리'를 선보였다.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자동차는 실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1월 'CES 2019'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와 모빌리티 시대의 디자인 철학인 '스타일 셋 프리'를 선보였다.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자동차는 실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은 올 1월 'CES 2019'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와 모빌리티 시대의 디자인 철학인 '스타일 셋 프리'를 선보였다.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자동차는 실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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