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생활고에 금은방 턴 20대…금덩어리 왜 하천에 버렸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주도에서 회사에 다니던 이모(23)씨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지난해 겨울 직장을 그만뒀다.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던 그는 지난해 12월 군대 동기가 사는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목돈이 없던 탓에 월세로 원룸을 얻어 혼자 살았다.

대전유성경찰서 금은방 털이

대전유성경찰서 금은방 털이

대전으로 왔지만 마땅한 직업도 구하지 못했다. 그러기를 몇달, 게임중독으로 원룸과 PC방을 전전하던 이씨는 생활비가 떨어지자 ‘큰돈’을 마련할 궁리를 했다. 생각난 게 금은방이었다. 금을 훔쳐서 팔면 현금화가 쉽고 한꺼번에 수천만 원의 목돈도 쥘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게임중독 뒤 생활비 위해 금은방 털어… 범행 전 답사 #훔친 금붙이 녹여 금덩이로 만든 뒤 매매 시도 #일련번호 없는 금덩이 판매 어렵자 하천에 버려

금은방 털기를 결심한 이씨는 자신이 사는 대전 유성구 일원의 금은방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걸어 다니면서 방범 상태를 확인하고 금은방에 직접 들어가 금붙이가 놓인 진열장 위치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경찰과 보안업체가 출동하기 전 순식간에 범행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이곳저곳을 물색하던 도중 방범창이 설치돼 있지 않은 금은방이 이씨의 눈에 들어왔다. 손님인 것처럼 가장해 금은방에 들어간 그는 진열장 위치부터 확인했다. 마침 출입문 바로 옆에 순금을 진열한 상태였다. 그는 그곳을 범행대상으로 정했다.

범행 날짜와 시간을 고민하던 이씨는 인적이 뜸한 시간을 택했다. 지난달 12일 오전 3시20분쯤 자신의 원룸을 나선 그는 금은방 입구에 도착, 미리 준비한 둔기로 강화유리를 깨고 침입했다. 진열장도 둔기로 부수고 금목걸이와 금반지, 금팔찌를 골라 자루에 담았다.

그가 금은방을 터는 데는 불과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난신고를 받고 출동한 보안업체가 도착하기 전 이씨는 유유히 범행 장소를 떠났다.

당장 현금이 없던 그는 충북 청주의 한 금은방에서 금반지를 팔아 도주 자금(85만원)을 마련했다. 이후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강원도 춘천으로 이동했다. 춘천의 여관에서 사흘간 머물며 토치램프로 금반지와 금목걸이를 녹여 2개의 금덩이로 만들었다. 일련번호가 남아 있는 금붙이를 팔면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금덩이 2개의 무게는 300g(80돈가량)으로 시가 2000만원 상당이었다.

대전유성경찰서 금은방 털이

대전유성경찰서 금은방 털이

서울을 거쳐 전남 목포로 이동한 그는 또 다른 금반지를 팔아 현금 83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가 목포로 내려온 이유 중 하나는 군대 동기가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금덩이 매매를 시도했던 이씨는 금은방에서는 녹인 금을 매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하천에 버렸다.

이씨를 추적하던 경찰은 그가 충북 청주와 춘천, 서울을 거쳐 목포까지 도주한 사실을 확인했다. PC방에서 게임에 빠져 있던 이씨는 지난 23일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그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검거 당시 이씨는 금은방에서 훔친 금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씨가 금덩이를 버린 하천을 수색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씨로부터 금은 매입한 금은방 업주를 장물취득 혐의로 입건하고 목포의 금은방 업주도 입건할 방침이다. 금은방 업주들은 “훔친 물건일 줄 몰랐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장물인 것을 알고도 매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금을 매매할 때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관련 서류를 작성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전유성경찰서 금은방 털이

대전유성경찰서 금은방 털이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전형적인 은둔형으로 게임에 중독된 뒤 직장까지 그만두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