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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공족” 이제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27)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인 일명 '카공족'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서울대 입구역 앞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인 일명 '카공족'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서울대 입구역 앞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지금 도서관 북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있다. 여기는 싸고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인터넷 검색도 해가면서 글 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맞다. 나는 지금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카공족’ 논쟁이 많았기에 카페에서 공부나 일을 한다고 밝히기 힘들었다. 자리를 장시간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업주의 영업에 지장을 주고 다른 손님한테도 민폐라는 게 비판의 요지다. 당연히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만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많이 사라졌다. 인터넷에 ‘카공족’을 쳐보면 전처럼 ‘문제 있다’는 비판과 ‘좀 어떠냐’는 반발이 별로 없다. 대립 대신 ‘스터디 카페’, ‘커피전문점 1인석’, ‘프리미엄 독서실’ 등 새로운 관점의 내용이 많아졌다. 어떻게든 논쟁이 마무리되고 있는 것 같다.

불과 1년 안쪽의 일이다. 지금까지는 카공족에 대한 비판 의견이 월등히 우세했다. 공부하는 사람 때문에 정작 커피 마시러 온 사람들이 앉을 곳이 없어서다. 나도 그 비판 대열에 있었다.

회사에서 짧은 점심시간에 지인과 식사하고 간단히 차 한잔하며 마무리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몇 곳씩 떠돌다 보니 그들의 행태가 비양심적이라 느껴졌다. 세미나를 하거나 노트북 펴고 뭔가 하는 젊은 층들이 많던 터라 ‘요즘 젊은 사람들’하는 식으로 일반화해서 매도하거나 ‘도서관 놔두고 왜 저래? 장사하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하며 업주의 피해를 표면에 내세워 말하곤 했다.

내가 자주 찾는 도서관 북카페에는 편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안내문에는 집중을 원하는 사람은 열람실로 올라가도록 정중히 권유하여 카공족과 커피 손님들 사이의 공존을 도모하고 있다. [사진 박헌정]

내가 자주 찾는 도서관 북카페에는 편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안내문에는 집중을 원하는 사람은 열람실로 올라가도록 정중히 권유하여 카공족과 커피 손님들 사이의 공존을 도모하고 있다. [사진 박헌정]

그러다가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퇴직 후 도서관을 거점으로 활동하는데, 간간이 커피 마시기 위해 주변 카페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카페에 눌어붙어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테이블에는 스마트폰, 책, 노트북 순서로 물건도 다양해졌다. 그러면서 ‘카공’이 왜 좋은지 실감했다.

일단 카페는 밝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 반면 도서관은 딱딱하다. 카페에는 화이트 노이즈, 특히 좋은 음악이 있다.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라 온도와 습도가 마음에 들고 의자, 테이블도 편하다. 통화가 가능하니 외부와 연락해야 할 때 편하다. 무엇보다도 커피가 있다!

그러니 이 좋은 환경을 누리려는 사람들의 방어논리도 만만찮았다. 내 돈 내고 자리 차지한 것이 왜 나쁘냐는 것이다. “열에 아홉은 카페에서 공부한다.”, “일부 지각없는 사람이 문제이지 텅텅 빈 카페에서 팔아주는 데 뭐가 나쁘냐?”고 한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내 입장도 그렇게 변했다. 중요한 것은 ‘접점’이다. 언젠가부터 그 절충점이 생긴 것 같다. 모든 일에 ‘배려’보다 좋은 솔루션이 있을까.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기준을 갖는 것이다. 내게도 원칙이 있다. 우선 이용시간은 최대 두 시간이다. 더 있으려면 더 주문하는데, 체질상 커피를 많이 못 마시니 다른 음료나 음식을 산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어 적당히 있다가 도서관 열람실로 향한다. 1인석이나 작은 좌석에 앉는다. 작은 규모의 개인 업장에서는 커피만 마시고 나온다. 점심시간을 피하고 다른 시간대에도 손님이 많아지면 일어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솔루션은 시장이 제공해준다. 자본사회에서 사람들의 습성은 곧 ‘돈’이다. 구매 행동에 어떤 흐름과 질서만 파악되면 바로 영업전략이 나오지 않던가. 1인 좌석을 만들어 홍보하는 업체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본매출과 홍보에 도움이 된단다. 데이터의 힘을 빌린 분석결과일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원가에 반영할 수도 있다. 스터디 카페도 생겨난다. 눈치 보는 입장에서 대접받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직 찜찜한 구석도 있다. ‘배려’가 기본이 된 묵시적 합의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이기적 심성, 일명 ‘무개념’인 사람이 문제다. 대응방법이 마땅찮은 동네의 작은 카페들은 여전히 속앓이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카공족’을 검색해봐도 극단적인 비판의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페에서 공부하면서 민폐 끼치지 않는 방법’처럼 합리적인 의견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 박헌정]

최근에는 인터넷에 ‘카공족’을 검색해봐도 극단적인 비판의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페에서 공부하면서 민폐 끼치지 않는 방법’처럼 합리적인 의견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 박헌정]

그래도 요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잘 읽어보면 자정(自淨)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부하더라도 음악을 줄여달라거나 대화하는 사람들에게 눈치 주는 건 아니지 않냐, 혼자 4인석을 차지하면 어떡하냐’ 등 카공족들 간 자성의 목소리다. 카페 업주들도 한 다리 건너면 나의 부모 형제일 테니 적정한 선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하면 이쪽, 또 어떻게 하면 저쪽으로 나의 입장이 바뀌는 일이 많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논쟁이 대표적이다. 대화, 담론, 공론화… 많은 소통방법이 있는데 무턱대고 공격해대며 약자끼리의 다툼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좋겠다. 카공족 문제는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소통해서 해결한 긍정적인 사례 같다.

“모두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한때 나는 회사에서 면접 대기 중인 지원자들에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덕담을 건네곤 했다. 전부 뽑지도 않을 거면서 어떻게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바라는가. 그런데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카공족들도 취업시험 잘 붙고, 카페 주인도 돈 많이 벌고, 다른 손님들도 카페에서 편안한 시간 가지라고. 모순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법은 나오게 된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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