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北 안전보장 美에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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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와 이라크 지원 등 주요 현안을 다룬 미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을 설득해 보조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

부시 대통령은 26일과 27일 연이틀 푸틴 대통령을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초청해 회담하는 '호의'를 보였다. 텍사스의 크로퍼드 목장이나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된 외국 정상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 소수에 불과하다. 부시 대통령은 그만큼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회담이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양 정상은 회담에서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언급했던 이라크.이란.북한 등 세 나라 문제를 집중 논의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각자의 기존 입장만 되풀이해 내세웠을 뿐이다.

공동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입증 가능하고, 다시 되돌릴 수 없도록 끝내야 한다"고 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안보를 우선 보장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그는 "선결조건은 건설적 대화를 위해 한반도 주변에서 우호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이 문제에서 미국과 협력할 의향이 있다"면서 은근히 미국의 책임을 강조했다.

양측은 이란 문제에서도 입장 차이가 컸다.

러시아는 이란에 8억달러짜리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있다. 게다가 지난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농축우라늄을 축적하는 증거가 있다고 공개했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러시아의 발전소 건설을 빨리 중단시켜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의심받는 원자력 프로그램에 대해 이란이 IAEA의 사찰을 받도록 촉구하겠다"면서도 공사는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라크 문제도 미국 입장에선 성과가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인 이라크 지원 문제를 "유엔 결의안이 나온 후에 보자"며 피해나갔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이라크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이견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의 핵심은 이해하고 있다"면서 추상적인 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나는 그(푸틴)를 좋아한다. 시간을 함께 보낼 만한 좋은 상대"라고 말하며 푸틴을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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