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병원 밖엔 희망 없어"...퇴원 후 극단적 선택 정신질환자 1년 내 가장 많아

중앙일보

입력

정신질환을 앓다 퇴원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3분의 1은 1년 내 이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정신질환을 앓다 퇴원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3분의 1은 1년 내 이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정신장애인 인권운동을 벌여 온 김모(당시 50세)씨는 지난해 4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금융권의 좋은 직장까지 다녔던 김씨는 외환위기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질환을 얻었다. 치료를 받고 시민단체 활동도 이어갔으나 병원·집을 오가는 생활의 반복 속에 무기력에 빠졌다. 결국 퇴원 후 김씨는 희망의 끈을 놓고 말았다.

연세대 연구팀 환자들 행적 추적 #퇴원 후 병원 사후 관리 중요성

김씨의 지인 홍주표 목사(44)는 “이겨내려고 싸웠지만 방법이 없었다”며 “병원에 나오면 시스템도 없고 버려진 사람들처럼 사는 데 개인이 이겨내기 너무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정신질환을 앓다 퇴원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36.7%는 1년 안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은아 연세대 약학대 교수 연구팀이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다가 2005~2012년 퇴원한 성인 1만2717명을 대상으로 퇴원 후 행적을 추적한 결과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국제질병분류(ICD) 기준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기분장애학회 학회지 ‘정서장애’(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게재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구팀에 따르면 퇴원 후 해가 지날수록 극단적 선택을 하는 확률은 낮아졌다. 퇴원 후 ▶1년 내 36.7% ▶2년 내 25.5% ▶3년 내 13.9%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은 3.42년이다.

비정신질환으로 퇴원한 환자에 비해 정신질환으로 퇴원한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은 7.2배였다. 또한 환자가 아닌 일반인에 비교하면 23배나 됐다.

18일 오전 진주 아파트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 안씨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송봉근 기자

18일 오전 진주 아파트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 안씨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나서고 있다.송봉근 기자

가장 취약한 정신질환은 우울증이었으며 뒤이어 조울증·물질사용장애·조현병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현병은 지난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뒤 흉기 난동을 일으켜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성이 이 병을 앓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성훈 한국형사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신질환자라고 다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 위험성이 있는 사람 중 폭력성을 표출하는 시기가 온다"며 "폭력성이 자신에게 향하면 극단적 선택, 남에게 향하면 살인이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퇴원 후 1년 내 해당 정신질환에 대한 외래치료를 받는 환자는 치료를 받지 않거나 더 적게 받는 환자들에 비해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이 더 적었다.
연구에 참여한 최재우 연세대 약학대 연구원은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받으면 자살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번 연구에서 주요한 결과로 나타났다”며 “퇴원한 환자가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정신장애연대 권오용 사무총장은 “미국 애리조나의 경우 입원 23시간 내 퇴원이 원칙이지만 대신 지역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있는 센터에서 관리한다”며 “입원하지 않고도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한국은 병원 입원에만 치우쳐 있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5일 자해 또는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 환자가 퇴원하면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정신질환 치료 관리체계를 개선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궁민·박해리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