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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 돼가는 제주 바닷속 "더는 감출 수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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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정방폭포 앞 자구리 바다 속 쓰레기. 페트병과 캔 등 쓰레기가 오니와 섞여 쌓여 있는 현장을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가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선명]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폭포 앞 자구리 바다 속 쓰레기. 페트병과 캔 등 쓰레기가 오니와 섞여 쌓여 있는 현장을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가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선명]

제주도 바다가 속으로 썩어가고 있다.

일부 해안의 바다 밑이 쓰레기와 토사, 오니로 범벅이 된 채 방치되고 있다.
바닷속 산호 역시 낚싯줄과 그물로 뒤덮여 훼손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항 동쪽 자구리 바다 밑에는 플라스틱병과 캔, 옷가지 등 온갖 쓰레기가 쌓여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태다.

산호 서식지인 서귀포 앞 문섬 인근 해저의 기차바위에서도 낚싯줄이나 그물 등 쓰레기가 산호를 뒤덮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육지에서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 못 한 탓에 바다가 병들고 있는 셈이다.

자연환경국민신탁과 '문섬 47회' 등은 지난 7일 서귀포 자구리 해안과 문섬 기차바위 인근에서 해양 쓰레기 실태 조사를 진행했고, 이 때 확보한 사진과 영상을 14일 중앙일보를 통해 공개했다.

자연환경국민신탁은 2006년 제정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에 따라 만들어진 법인으로 개인·기업·단체로부터 보전 가치가 있는 자연환경 자산을 기부·증여·위탁받아 미래 세대를 위해 지키고 관리하는 단체다.

쓰레기·토사·오니가 범벅

제주도 정방폭포 앞 자구리 바다 속의 쓰레기 더미.[사진 김병일]

제주도 정방폭포 앞 자구리 바다 속의 쓰레기 더미.[사진 김병일]

제주도 정방폭포 앞 자구리 바다 속 쓰레기. 페트병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오니와 토사와 범벅이 돼 쌓여 있다. [사진 이선명]

제주도 정방폭포 앞 자구리 바다 속 쓰레기. 페트병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오니와 토사와 범벅이 돼 쌓여 있다. [사진 이선명]

서귀포항 동방파제 바깥쪽 정방폭포와 가까운 동쪽 지역인 자구리의 수심 10~13m 지점.
물속은 마치 커다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조사팀이 탐침으로 바닥을 찌르자 1m 깊이까지 쑥 들어갔고, 탐침을 빼낼 때는 오니가 흩어지며 시커먼 흙탕물이 일었다.

쓰레기와 토사, 오니가 뒤섞여 1m 두께로 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으로 조사에 참여했던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는 "바다에 쓰레기가 쌓였다기보다는 아예 쓰레기장에 물이 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페트병과 나무 조각, 옷가지 등 각종 쓰레기가 집중적으로 쌓인 쓰레기 더미는 해안에서 남쪽으로 150m까지 길게 이어졌고, 폭은 20~30m가량 됐다.
주변에 쓰레기가 조금씩 흩어져 쌓인 면적까지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약 2만㎡의 면적에서 쓰레기가 발견됐다.

서귀포 항구 안쪽은 해양환경공단이 청소하지만, 이곳은 바다 쓰레기 수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중 조사에 참여한 정수원 '문섬 47회' 대표는 "자구리는 방파제 등으로 인해 물살이 빠르지 않은 곳이어서 쓰레기가 계속 쌓인다"며 "바다 쪽에서 밀려온 것도 있겠지만, 주로 육지에서 떠내려와 쌓인 것"이라고 말했다.
'문섬 47회' 회원인 김병일(태평양다이빙스쿨 대표) 씨는 "과거에도 태풍 때 이곳에 쓰레기가 쌓였지만, 지금처럼 많이 쌓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산호 보물창고 범섬 훼손 심해

서귀포 범섬 산호와 바위를 휘감은 낚시줄과 끈을 제거하고 있는 조사팀. [사진 이선명]

서귀포 범섬 산호와 바위를 휘감은 낚시줄과 끈을 제거하고 있는 조사팀. [사진 이선명]

제주 범섬의 산호와 쓰레기. [사진 김병일]

제주 범섬의 산호와 쓰레기. [사진 김병일]

서귀포항에서 남서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 범섬.
기암절벽과 해식애가 발달해 경치가 뛰어난 이곳은 2000년에 인근 문섬과 함께 '문섬 및 범섬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421호)'으로 지정됐다.

조사팀은 범섬 인근 수심 15~25m의 기차바위를 조사했다. 기차바위는 길이 100m가 넘고 폭이 50m 안팎인 암초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산호류의 70~80%가 발견되는 산호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하지만 조사팀이 둘러본 결과, 유실된 통발·주낙 끈이 부채뿔산호나 밤수지맨드라미 같은 산호와 뒤엉켜 있었다.
조류가 빨라 쓰레기가 쌓이지는 않았지만 버려진 낚싯줄이 산호와 바위를 칭칭 감고 있었다.

범섬 물밖으로 끌어낸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는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 [사진 자연환경국민신탁]

범섬 물밖으로 끌어낸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는 전재경 자연환경국민신탁 대표. [사진 자연환경국민신탁]

조사에 참여한 이선명('수중세계' 발행인) 씨는 "주낙이나 폐그물 등에 산호가 찢겨 나가기도 하고, 낚싯줄이 해면동물 몸을 파고 들어가 폐사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차바위 주변 바닷물도 탁해졌다.
이 씨는 "과거에는 물 아래에서 15m 거리까지 보였지만, 이제는 5m까지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근 문섬 47m 지점에는 4.6m 크기의 커다란 해송(산호의 일종)이 있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주지역 다이버들을 중심으로 '문섬 47회'가 만들어졌는데, 얼마 전에 이 해송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해송이 주낙이나 어선에 의해 뜯겨나갔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정 회장은 안타까워했다.

"더는 숨길 수 없어"

범섬 수중 쓰레기를 제거하는 모습. [사진 이선명]

범섬 수중 쓰레기를 제거하는 모습. [사진 이선명]

제주도 주변 오염이 심해진 것은 육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쓰레기들 때문이다.
정 대표는 "육지를 걷다 보면 농로 주변에 마구 버린 쓰레기가 눈에 띄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버린 도시락 포장재 등 일회용품도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제주도에 있는 250여곳의 육상 물고기 양식장(축양장)에서 내보는 오염물질, 축산분뇨 탓도 크다. 축양장에서 나오는 먹이 찌꺼기나 배설물 등이 그대로 바다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육상에서 진행되는 각종 공사 탓에 토사도 많이 흘러든다.

이에 문섬 47회와 제주도 수중레저협회, 제주도 핀수영협회 등 제주지역 다이버들은 "더는 감출 수도 없는 만큼 쓰레기를 건져내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공개를 결정했다.

전 대표도 "다이버들이 연중행사로 쓰레기를 걷어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며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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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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