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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좀 깎아요! 아내가 또 째려본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9)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일흔아홉 살 나는 오늘도 빼놓지 않고 마누라한테 지청구를 듣고야 말았다.
여고 동창회에 나간다며 현관문 열고 나가려던 마누라가 문을 열다 말고
획~ 고개를 돌려 거실에 어정쩡 서 있는 나를 째려본다.

“아무리 집구석에서 빈둥거리는 백수래도 수염이나 좀 깎지 그래.
꼭 길거리 노숙자 같잖아. 미쳐요, 내가 정말!”
말소리가 마누라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씰룩거리는 입 모양새가
마치 쓴 약을 머금은 듯싶다.

그래! 마누라의 표정이 고맙다.
만약 마누라의 씰룩거리는 저 입에서 실제로 말 폭탄이 터져 나왔으면
아마도 나는 자리에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나쁜 자식.
나는 왜 늙은 티를 내고 있었을까?
수염이 텁수룩한 삼시 세끼 백수의 엉거주춤한 자태의 늙은이 티를
같이 사는 마누라한테 부끄럼 없이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반성하자. 당장 수염을 깎자.
그래서 아내 말을 잘 듣는 일흔아홉 살 젊은이로 탈바꿈하는 거다.
왜? 꼴불견스러운가?
자네들도 늙어보면 자연스레 알 거다.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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