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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망명정부 세우자" 김정은에 맞서는 밀레니얼 반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월 말 스페인의 북한대사관 습격사건이 미궁 속에 있는 가운데, 사건 일주일 전 ‘자유조선’과 유사한 단체가 한국에서 단원을 모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 의로운 청년’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2월 14일부터 20일까지 16~34세의 청년들을 온ㆍ오프라인으로 모집했다. 단체는 모집글에서 “우리는 남북한의 젊은 운동가들로 구성된 한 가족”이라고 소개하며 '현장요원, 정보요원' 등을 모집했다. QR코드와 구글 드라이브로 온라인 지원서를 받았으나, 7일 현재 모든 온라인 글과 사이트가 삭제됐거나 차단된 상태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해당 글은 서울대ㆍ연세대ㆍ중앙대 등 각 대학 통일 관련 동아리ㆍ학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탈북자 단체ㆍ종교시설의 웹사이트에 2월 14일 일제히 뿌려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인 2월 22일 스페인 습격사건이 일어났다. 단체는 모집글을 통해 “북의 포학으로부터 우리 형제 자매들을 해방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우리의 운동과 저항 방식은 새로운 것이며 미래의 조선을 위한 우리의 헌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북한전문매체 NK뉴스도 지난 1일(현지시간) "자유조선과 용어ㆍ신념 등이 매우 유사한 단체"라며 이 단체를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습격 사건 이후인 지난달까지 연세대 학내에 모집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 사진을 제보한 연세대 정치학 박사과정 박현우씨는 중앙일보에 "스페인 습격 사건이 있고 나서 3월 12일에 해당 포스터를 학교 안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ㆍ북한 청년 교류단체인 '통일의 별'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단체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자유조선의 슬로건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단체여서 연관된 단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연세대 학내에 붙어있던 '조선 의로운 청년' 포스터. [박현우 통일의 별 대표 제공]

지난 12일 연세대 학내에 붙어있던 '조선 의로운 청년' 포스터. [박현우 통일의 별 대표 제공]

84년생 김정은에 맞서는 밀레니얼 세대 반군?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 받고자 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유조선은 국제사회의 여론 측면에서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 될 전망이다. 자유조선은 지난 2월 28일 유튜브를 통해 “광복이라는 밝은 빛이 평양에 다다르는 날까지 인민을 압제한 자들에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체설립 목적도 '북한 체제 전복'으로 인권 위주의 기존 단체와는 사뭇 다르다. 이들이 김정남(2017년 사망)의 아들 김한솔의 육성 영상을 공개하면서, 김한솔을 구심점으로 반체제 활동을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자유조선은 뉴욕과 서울, 런던을 기반으로 한 청년들이 주축이라고 알려져 있다. 리더격으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35)도 미 명문대 출신이라고 주장해왔다. 영어·한국어에 능통하고 SNS를 활용하며, 영미권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1980년대 초반~2000년대 출생)’로 구성된 셈이다. 한글뿐 아니라 영어로 활발하게 자신들의 활동을 전파하고 있다.

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 그 역시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다. [연합뉴스]

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 그 역시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다. [연합뉴스]

한국에 거주 중인 2,30대 탈북자들은 자유조선이나 스페인 습격 사건을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박현우씨는 “북한에 가족이 남아있는 경우 말 자체를 안 꺼낸다"며 "가족이 없거나 함께 한국에 온 젊은 친구들 위주로 새로운 정치적인 활동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초반의 탈북자는 “그간 탈북자 구조 활동 위주는 1세대 방식”이라며 “이들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에 재학 중인 한 탈북 학생은 “몇 년 전 미국에 거주하는 전직 외교관 등 고위직 출신 탈북자들을 위주로 망명정부를 세우자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관련 주장이 현실이 됐는지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조선의 급진적인 행동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스페인 습격 사건을 기점으로 테러 조직으로 인식돼 와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스페인 습격 사건은 북한의 반인도적 면모를 일깨우는 데 역할을 했지만, 언론에 알려진 대로 폭력을 행사했고 미국 정부와 연결이 돼 있다면 위험했고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자유조선은 지난달 31일 “큰일들을 준비하고 있다”며 추가 행동을 예고했다.

2월 28일 자유조선은 탑골공원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자유조선 유튜브 캡처]

2월 28일 자유조선은 탑골공원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자유조선 유튜브 캡처]

에이드리언 홍 "신천지가 전개…"

스페인 습격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에이드리언 홍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아직까지 스페인 법원이나 자유조선 측이 에이드리언 홍을 '에이드리언 홍 창'과 동일 인물이라고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AFP 등 외신은 그가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대북 인권활동가 홍과 동일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 에이드리언 홍의 2014~2015년 트위터를 보면 그가 ‘행동’에 나설 것을 암시하는 문구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트위터의 마지막 게시글은 2015년 1월 1일자였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의 한글판ㆍ영문판 문구가 각각 올라와 있다. "아아, 신천지(新天地)가 안전(眼前)에 전개(展開)되도다.위력(威力)의 시대(時代)가 거(去)하고 도의(道義)의 시대(時代)가 내(來)하도다“는 대목이다. 자유조선도 3.1운동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다. 올해 2월 28일 '자유조선 임시정부 선언' 유튜브 영상을 보면 탑골공원에서 단발머리,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선언문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탑골공원은 과거 기미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던 곳이다. 에이드리언 홍은 볼테르의 "모든 인간은 자신이 행하지 않은 선행에 대해 죄가 있다”는 문구도 올렸다.

에이드리언 홍을 만났던 탈북ㆍ인권 단체 관계자들은 “명석하지만 급진적인 느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천기원 두리하나학교 대표는 “링크(LiNK·북한인권단체) 활동 때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며 “워낙 똑똑한 친구였지만, 최근 뉴스를 보며 (그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활발하게 북한 인권 운동을 해왔던 청년이 모형 총기를 사들이고, 대사관 관계자를 결박하는 등 과격 행동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달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괴한 침입 사건 용의자 '에이드리언 홍 창'. [AFP=뉴스1]

지난달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괴한 침입 사건 용의자 '에이드리언 홍 창'. [AFP=뉴스1]

美 NSC 경력 '빅피시' 변호사 선임, 자금 출처는

스페인 현지 언론들은 에이드리언 홍이 직전까지 미국에서 다수의 회사를 운영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확인 결과 에이드리언 홍이 2015년 4월과 6월 뉴욕주에 법인을 등록한 ‘페가수스(천리마) 스트레티지스’와 ‘조선연구소’는 현재까지 등기가 살아있다. 페가수스는 유한책임회사, 조선연구소 비영리(Non-profit) 법인으로 등록했다. 특히 조선연구소는 브로드웨이 한복판을 사무실이라고 신고했다. 이 지역 임대료는 월 수천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 직후 자유조선의 입장을 대리해서 밝힌 리 올로스키 변호사의 등장도 범상치 않다. 올로스키는 2015~2017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특사를 지냈고 클린턴ㆍ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초국가적 위협’ 담당 국장을 지낸 ‘빅피시(Big Fish·거물)’이다. 현재 미국 유수 로펌인 보이스쉴러플렉스너(BSF)의 뉴욕 지사 파트너 변호사로 있다. 올로스키는 사건 직후 "잔혹한 정권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스페인 법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본지의 e메일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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