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내친구] 확 달라진 승부차기 … 46%가 막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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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승부차기'는 선수들의 피를 말린다. 더구나 월드컵 무대에서 치러야 하는 승부차기의 부담은 어느 대회보다 크다. 11m 앞에서 골키퍼와 마주 서서 차는 승부차기는 '거의 100% 성공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맞물려 골키퍼보다는 키커의 부담이 훨씬 크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성공률은 60%도 안 된다. 16강과 8강 토너먼트에서 총 세 차례 벌어진 승부차기에서 24명 중 13명만이 성공시켰다. 성공률이 54.2%다. 정기동 한국대표팀 골키퍼 코치는 "일반적인 페널티킥의 성공률은 80% 수준"이라고 말했다. 11번의 실패 중 8번이 키커의 실축이 아니라 골키퍼의 선방에 의한 것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지난달 27일(한국시간) 스위스-우크라이나의 16강전에서 스위스는 세 명의 키커가 모두 실패했고, 30일 독일-아르헨티나의 8강전에서 독일 골키퍼 옌스 레만은 두 차례의 슛을 막아내 독일을 4강으로 이끌었다. 다음날 포르투갈의 히카르두는 잉글랜드 키커 세 명의 슛을 막아냈다. 이처럼 낮은 페널티킥 성공률과 골키퍼들의 '초특급' 활약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미리 움직일 수 있다=2002 한.일 월드컵부터 페널티킥 때 골키퍼가 미리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키커가 공을 차기 전까지는 일절 움직이지 못했다. 이 규칙 시행 후 두 번째 월드컵을 맞아 골키퍼들이 이 같은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레만은 아르헨티나 넷째 키커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슛하기 직전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캄비아소는 레만의 왼쪽으로 공을 날렸고 레만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려 여유있게 쳐냈다. "골키퍼가 미리 움직여 키커의 슈팅 방향을 유도한 것"이라고 정 코치는 분석했다.

◆ 철저한 사전 분석=독일 대표팀의 올리버 비어호프 매니저는 3일 "레만이 승부차기에서 상대가 공을 찰 방향을 사전에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페널티킥 데이터를 모두 수집해 레만에게 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만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찬 네 번의 페널티킥에 모두 일치된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16강 토너먼트부터는 골키퍼들이 승부차기에 대비한다. 승부차기가 없는 조별리그에서 10번의 페널티킥 중 8골이 나와 성공률이 80%였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 경험과 심리적 요인=히카르두는 2004 유럽선수권 8강에서 잉글랜드를 승부차기로 물리친 바 있다. 반면 잉글랜드는 역대 월드컵 두 번의 승부차기에서 모두 패했다. 정 코치는 "승부차기에서 진 경험이 있는 상대와 다시 승부차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라고 말했다.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3전 전승을 기록한 독일은 이번에도 한 명도 실축하지 않고 거침없이 골 네트를 갈랐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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