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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NASA 만들자 하니, 공무원 늘리겠다는 과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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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누리호 시험발사체가 발사된 지난해 11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통제동 모습. [연합뉴스]

누리호 시험발사체가 발사된 지난해 11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통제동 모습. [연합뉴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우주탐사와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우주청’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과학기술계에서 필요성을 제기해온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독립된 형태의 우주청이 아닌, 과기정통부 내 국장급 관료가 이끄는 우주국(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4개 과로 구성된 우주국 검토 #우주 분야 연 360조 거대 산업 #“우주청은 독립·전문성 갖춰야”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2일 중앙일보에 “최소 4개 과로 구성된 우주국을 만들기 위한 실무 검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독립된 우주청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과(科) 하나 늘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선 국 단위로 시작하고 추후에 청(廳) 규모의 독립기관 형태이든 아니면 또 다른 형태로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부정적이다.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우주청 설립의 이유는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며 “독립된 청 형식이 아닌 우주국을 만들면 여전히 순환근무의 틀 속에서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예산도 독립적으로 할 수 없어 제대로 된 우주정책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행정부처 내 우주정책 관련 조직은 과기정통부의 ‘거대공공연구정책과’와 ‘우주기술과’ 2개 뿐이다. 거대공공연구정책과는 우주정책을 총괄하는 부서로, 총괄 업무 외에도 한국형발사체와 우주산업화·국가우주위원회·우주항법(GPS) 등을 맡고 있다. 우주기술과는 위성 정보활용 총괄과 인공위성·달탐사·우주핵심기술·우주위험물(소행성·우주쓰레기 등)을 담당한다.

두 과의 전체 인원은 19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담당자들이 1~2년 만에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다. 이 때문에 한국천문연구원이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우주 관련 정부출연연구소에서는 ‘담당 공무원들이 알만하면 떠난다’ ‘어설픈 공무원 뒤치다꺼리하다가 세월 다 보낸다’는 불평이 쏟아진다.

국회미래연구원도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이 정치권을 설득하지 못하고 휘둘리면서 어설픈 보고서·기획서를 남발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들어진 달 탐사 계획이 박근혜 정부 당시 5년 당겨졌다가, 현 정부 들어 10년 뒤로 밀려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출연연도 비효율적이다. 우주과학은 한국천문연구원이, 로켓과 위성 개발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맡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으로 역할이 분산돼 있다. 당장 지난해 발표한 제3차 우주계획에 따라 소행성 탐사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천문연과 항우연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우주정책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이 맡고, R&D는 출연연들이 각자도생하는 모습이다.

과기정통부도 현재의 우주 관련 조직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현재의 우주개발 조직은 과거 연구·개발(R&D)에 적합한 체계이기 때문에, 우주 공간의 상업적 이용과 국제협력·국제규범 등의 대응에는 한계가 드러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은 어떻게 할까.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은 독립된 ‘우주청’(agency)에서 정책과 R&D를 같이 한다. 미국 NASA, 러시아 ROSCOSMOS, 중국 국가항천국이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영국·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뿐 아니라,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룩셈부르크 등 인구 1000만 명 미만의 나라들도 우주청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우주 관련 출연연과 유사한 기관들을 통합하고, 관료조직도 일부 포함한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국가를 대신해 우주청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태식 한양대 교수는 “우주 분야는 이제 기초연구나 탐사 단위가 아닌, 연간 360조원 규모의 거대산업으로 성장했다”며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서둘러 우주청을 설립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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