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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 83세 '코딩 척척' 일본 할머니 “노인은 왜 못 배우나요”

중앙일보

입력

"콜 미 마짱!"

고졸 은행원으로 정년 퇴직한 후 디지털 전도사로 거듭난 일본인 할머니는 자신을 편하게 "마짱"이라고 부르길 원했다. 1936년생 와카미야 마사코(若宮正子·83)는 2년 전인 2017년 iOS용 게임 '히나단'을 개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같은 해 전 세계 프로그래머가 모이는 애플 개발자대회(WWDC)에서 기조 연설도 하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도 만났다. 중앙일보는 지난 25일 프로그래머 이두희씨와 함께 서울 광화문에서 한국을 찾은 세계 최고령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를 인터뷰했다.

'전 세계 최고령' 할머니 개발자, 이두희씨와 만나 

일본에서 이른바 ‘수퍼 IT 할매’로 불린다는 와카미야 할머니는 "모바일을 통해서, PC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데 그 재미를 왜 놓치느냐"고 말한다. 특히 자신이 만든 게임 '히나단'을 언급하면서 "프로그래밍이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나단 게임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전통 인형 12개의 올바른 위치를 찾아 단상에 올리면 되는 게임이다. 정답을 맞추면 '퐁'하는 소리가 나고, 틀리면 '삐'하는 소리가 난다. 심지어 한국어도 지원한다.

와카미야 마사코씨가 만든 iOS용 앱 '히나단'(왼쪽). 이두희(왼쪽)씨와 마사코씨가 함께 인터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와카미야 마사코씨가 만든 iOS용 앱 '히나단'(왼쪽). 이두희(왼쪽)씨와 마사코씨가 함께 인터뷰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그는 “우리 같은 노인은 손가락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서 젊은 사람과 게임을 하면 늘 진다”며 “나이 든 사람도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게 할 만큼 재미있는 아푸리('앱'을 일컫는 일본어)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와카미야 할머니는 60세가 돼서야 컴퓨터를 처음 접했다. 1954년 고등학교 졸업 후 43년간 미쓰비시 은행에만 다녔고, 퇴직 후에는 치매를 앓는 노모를 돌보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애플의 개인용 PC '맥'을 사들였고, 스스로 참고 서적을 읽어가며 애플의 프로그래밍 언어 ‘스위프트’를 배웠다. 그는 "모르는 부분은 2주일에 한 번씩, 2시간가량 인터넷 화상 통화로 미야기현에 사는 엔지니어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야기현과 와카미야가 사는 가나가와현은 약 300㎞ 떨어져 있다.

팀 쿡 애플 CEO에게 조언, 아베 '100세 시대 회의' 위원 

와카미야 할머니는 애플을 이끄는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WWDC에 참가한 와카미야에게 팀 쿡이 "고령자가 앱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하냐"고 물어보자 "노인들은 화면을 위로 끌어올리고 하는 동작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소리를 내는 편이 고령자를 위한 훌륭한 이용자 경험(UX)"이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만든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 위원이기도 하다.

팀 쿡 애플 CEO와 만난 일본의 'IT 수퍼 할머니' 와카미야 마사코. [사진 유튜브 캡처]

팀 쿡 애플 CEO와 만난 일본의 'IT 수퍼 할머니' 와카미야 마사코. [사진 유튜브 캡처]

와카미야씨는 방한 전 "한국에 재미있는 개발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프로그래머 이두희씨에게 e메일을 보내 만남을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이씨 역시 문과 대학생을 비롯해 컴퓨터 비전공자에게 무료로 코딩을 가르쳐주는 '멋쟁이사자처럼'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교롭게 36년생 일본인 개발자와 36세 한국인 개발자의 만남이 성사됐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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