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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자율주행차 완성까지 10년은 더…”

중앙일보

입력

하드웨어 기술 대비 소프트웨어 발전 속도 더뎌... 정부는 장기적·원천 기술 개발 지원해야

사진 : 김현동 기자

사진 : 김현동 기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다 풀린 일 같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때가 많다. 특히 창조의 영역에서 9부능선이란 없다. 성(成)과 패(敗)만 있을 뿐이다. 세계적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 UCLA 교수 겸 로봇매커니즘연구소 로멜라 소장이 최근 상용화를 앞둔 자율주행차에 대해 “10년 후에도 어려울 것”이라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천재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UCLA 교수

자율주행의 하드웨어 기술은 완비됐지만 도로 위 수많은 변수에 대응할 정도의 소프트웨어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홍 교수는 2009년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개발한 모빌리티 분야 전문가다. 홍 교수는 “마지막 2%를 이루려면 앞선 98%보다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가 2020년 운전자가 없는 레벨5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될지 메모해 뒀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대기업과의 로봇 프로젝트 진행차 한국을 찾은 홍 교수를 만나 로봇·모빌리티의 미래를 들었다.

최근 로봇 연구가 급진전하고 있는 이유는.

“여태껏 2번의 큰 점프가 있었다. 1970년대에는 알고리즘이 있어도 컴퓨터 속도와 용량이 뒷받침되지 못해 잘 안 됐다. 1980~90년대에는 저가의 빠르고 큰 용량의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공장 등 정형화된 공간에서 활동하는 로봇이 개발됐다. 지난 10년 간은 딥러닝 기술이 급진전을 이뤄 로봇이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학습하면서 여태껏 풀지 못한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최근 로봇공학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센서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도 저렴해졌으며, 여러 알고리즘이 새로 등장했다. 이에 비정형화된 환경에서 활동하는 로봇이 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빌리티 쪽으로도 이제 쓸 만한 기술이 나오고 있다. 다만 아직은 너무 복잡하고 위험하며 비싸다.”

연구소·대학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곳은 어디인가.

“물론 UCLA 로멜라다(웃음).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다른 연구소는 쫓아갈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네이버랩스가 가장 뛰어나다. 대학 중에서는 펜실베니아 대학교가 뛰어난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AI)이 사람 수준에 도달할 수 있나.

“불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학자들이 사람 같은 로봇을 만들려면 감정과 자아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뇌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 상황이라 그런 로봇은 나올 수 없다고 본다. 네트워크가 자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많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인 논거는 어디에도 없다.”

로봇이 꼭 이족보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로봇은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이며, 빨래를 개고 음식을 갖다 주는 등의 역할로 사람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할 것이다. 계단·문고리 등 생활환경을 비롯해 자동차·주방기기 등 도구를 사용하려면 사람과 같은 형태의 로봇이어야 한다. 또 바퀴로 이동하는 로봇은 산처럼 험준한 지형을 이동할 수 없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상용화할 수 있는 로봇은 뭐가 있나.

“쓸모가 있을 것, 기술이 있을 것, 가격이 쌀 것 등 이 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로봇은 여태까지 로봇청소기가 유일했고 대박이 터졌다. 이후로 아직 이 조건을 만족하는 아이템은 찾지 못했다. 장애인 보조 로봇은 아직 기술이 부족하고 비싸다. 로봇공학자들은 값을 떨어뜨리고, 기술을 만드는 일을 한다.”

자율주행차 역시 갈 길이 먼가.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은 한참 멀었다. 대다수 기업이 10년 안에, 머스크는 2020년에 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술의 98%보다 마지막 2%를 완성시키는 일이 훨씬 어렵다. 아직 2%는 완성 시키지 못했으며 10년도 더 걸릴 수 있다. 이미 자율주행 인프라가 깔린 신도시 등 제한된 환경이라면 레벨5 수준의 주행이 가능할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완전 대체할 수 있을까.

“로봇이나 AI가 사람의 업무를 완전 대체하는 것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로봇은 어디까지나 일을 편하고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테슬라도 정작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어 공장을 밤새 돌리기도 했다. 이론적으로는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로봇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공장 자동화와 비슷한 현상이다. 지금이 더 심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와 미디어의 과장 때문이다. 소피아도 실제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은 아니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빠르면 편하게 잘 이용하면 그만이다.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 문제다.”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인데, 여전히 직접 연구·개발(R&D)에 참여 하나.

“아직 28세다(웃음). 사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설계하고 깎고 조립하는 일이다. 자리 때문에 외부 미팅이 많고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지만 연구소에 갇혀 학생들과 호흡하는 것이 좋다. 현재 연구소의 여러 프로젝트는 모두 내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연구소 분위기도 수평적이라 학생들이 내가 출장 가는 것을 싫어한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국내 기업과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로봇의 이동성과 관련한 연구는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

“한국과 미국에서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젊은 과학자 육성을 위해 책 쓰고 방송 나가고 미팅하고 멘토링 등 외부활동을 한다. 미국에서는 집과 연구소만 오간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중심이고 연구가 보조 활동이다. 하루에 아이와 4시간 반가량 논다. 아들과 함께 [로봇일레븐]이라는 책도 썼다. 보통은 새벽 3~4시에 잠들어 4시간 반 정도 자며, 낮잠을 15분 정도 잔다.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연구소에만 있다. ”

연구소 창업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프트웨어 개발은 굉장히 어렵다. 처음의 98%보다 마지막 2%가 몇 배 더 힘들다. 마지막 2%의 어려움을 미리 고려하고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혁신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혁신은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을 때 생긴다. 한국은 실수를 하거나 실패하면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연구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다들 무서우니 안전한 길로만 간다. 국가·사회가 실패해도 좋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좋은 게 나올 수 없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정말 값비싼 시제품을 조금 더 가혹하게 다룬다. 빨리 망가뜨려 보라고 한다. 이런 경험이 아니면 배울 수 없다. 실패를 안 했다는 것은 도전을 안 했다는 얘기다.”

한국의 후배 공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구자들은 다들 열정 있고 똑똑하고 잘한다. 정부에 할 말이 있다. 대개 정부 과제를 받아서 하는데, 지원을 받는 순간부터 보고서든 제품이든 결과를 내놓으라고 압박을 한다.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연구할 수가 없다. 압박을 받다 보면 해외 기술 몇 개를 접목한 짜깁기 결과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미국은 원천 기술에 주로 지원한다. 이런 기술이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한국은 급하게 탑을 쌓으려고 하는데, 인내심을 갖고 장기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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