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루니, 2010년엔 황제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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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가 엘리손도 주심의 레드 카드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사진위). 루니가 분을 참지 못하고 물통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겔젠키르헨 AFP=연합뉴스]

놀라운 힘과 빠르기, 일당백의 투혼. 웨인 루니(21)는 잉글랜드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루니가 그라운드를 떠나 버린 후반 17분, 잉글랜드는 희망의 빛을 잃었다. 루니는 포르투갈 수비수 히카르두 카르발류와 승강이를 하다 흥분한 나머지 급소를 밟았고 바로 앞에서 지켜본 호라시오 엘리손도 주심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았다.

논란을 부른 장면. 로이터통신은 "심판은 심판위원회에 제출하는 보고서에 특정 선수를 퇴장시킨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 엘리손도 주심이 루니를 퇴장시킨 이유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어찌 됐든 루니가 퇴장당한 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에 일방적으로 밀렸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주장 데이비드 베컴의 말대로라면 '이번이 우승할 기회'였을지 모를 잉글랜드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져 짐을 싼 것이다.

루니가 그라운드를 떠나는 모습은 24년 전,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를 연상케 했다.

당시 마라도나의 나이는 22세. 78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아르헨티나 축구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이탈리아.브라질과의 2차리그에서 클라우디오 젠틸레(이탈리아), 오스카 베르나르디(브라질) 등 노련하고 거친 수비수들에게 농락당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마라도나는 브라질과의 경기 후반 37분에 수비수 바티스타의 급소를 걷어차 퇴장당했다. 스페인 월드컵 공식 기록영화의 내레이터는 "세계는 새 황제가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읊었다.

'황제'가 성숙하는 데 4년이 걸렸다. 마라도나는 86년 멕시코 대회에서 초인적인 플레이로 아르헨티나를 우승시켰다. 5골.5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심지어 손으로도 골을 넣었다(잉글랜드전).

2006년 루니의 독일 여행은 소득 없이 끝났다. 잉글랜드는 4년을 기다려야 한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 땅땅한 체격을 가진 잉글랜드의 악동은 새로운 황제가 될까.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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