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0기KT배왕위전 : 심리전, 그리고 교묘한 타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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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40기KT배왕위전'

<4강전 하이라이트>
○ . 서무상 6단  ● . 최철한 9단

정석은 법에 비유된다. 법은 아니지만 법 비슷한 것으로 '상용(常用)의 수법'이란 것도 있다. 그러나 정석이든 상용의 수법이든 고수들에겐 다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힘을 지닌 자는 바둑판 위의 법규를 깨뜨리고 싶어한다. 위험한 행동이지만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고 변화를 얻을 수 있으며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위험이 크면 이득도 크다.

장면 1(58~61)=서무상 6단이 58로 붙인다. 익히 보아 온 눈목자 굳힘의 급소. 흑이 A로 젖히면 슬슬 늘어 귀살이를 한다. 한데 최철한 9단이 수순을 비틀어 59로 밑바닥을 젖혀 왔다. 60엔 61. 다 잡자는 것이다. 자칫하면 쪽박을 찰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완력을 믿고 모험에 나선 것이다.

참고도=흑1로 젖히면 백4까지 산다. 상용의 수법이다.

장면 2(62~67)=62로 달아난다. 끊지는 못하니까 63으로 두자 64로 완강하게 연결한다. 이제 잡으려면 A로 푹 씌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이 배짱 좋게 나오니까 막상 이쪽도 겁난다. 백은 B도 선수이고 C에 이어 D로 틀어막는 수도 가능하다. 최철한 9단은 65로 슬쩍 응수를 물어본다. 백이 바로 막으면 E가 선수가 되고 그 수는 사활에 상당한 보탬이 될지 모른다. 사실 65는 협박을 담고 있다. 타협하자는 제스처이며 응하지 않으면 진짜 잡으러 간다는 신호다.

대마가 잡히면 끝장이기에 서무상 6단도 이쯤에서 물러섰다. 66으로 살아가고 67을 허용했다. 교묘한 타협이다. 59의 위험한 강수가 67로 이어지며 흑▲ 한 점을 살려냈다. 백의 정확한 대응으로 별 이득은 없었지만 고수들의 심리전을 엿볼 수 있는 가슴 서늘한 수순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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