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1년간 탐정 행세하며···"드론 띄워 이희진 부모 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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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3)씨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34)씨가 1년 전부터 이씨의 재판을 방청하고 이씨 부모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씨 주식사기 피해자 증언 #“숨긴 재산 많다며 만나자 연락 #범행 뒤에도 판 뒤집을거라 해” #실제 부친 차량에 위치추적기

이희진씨 주식 사기 사건 피해자와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4월부터 자신을 ‘일본에서 주로 일하는 탐정’이라고 소개하며 피해자들에게 연락해 왔다. 사기 사건 피해자 A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가 ‘드론을 띄워 24시간 이희진 부모를 감시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이씨 아버지의 차량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해 동선을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사건 초기 경찰에서 “1~2주 전에 위치추적기를 달았다”고 진술했다가 최근엔 “수개월 전에 설치했다”고 번복을 했다. 경찰은 김씨가 이씨 아버지 차량을 어떻게 확인했는지와 실제 드론까지 동원해 이씨 부모를 감시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

김씨와 사기 사건 피해자 A씨가 지난해 주고받은 e메일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이씨 재판을 방청하면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지난해 4월 A씨에게 e메일을 보내 ‘이희진씨에 대해 알릴 게 있으니 공판 전 만나자’고 제의했다. A씨가 만나주지 않자 이후 전화로 연락해 “내가 조사한 자료가 있는데, 언론에 나오는 거 보면 (이씨 형제 재산이) 굉장히 많이 축소되어 있더라”라며 “저희 업계 쪽 사람들끼리는 다 얘기가 돌고 돌아서,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것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25일 중국동포들과 함께 이씨 부모를 살해한 후에도 다시 A씨에 연락을 취했다. 김씨는 지난 15일 저녁 A씨에게 전화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그런 걸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A씨에게 “(주식 사기) 피해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안 할 거냐”라며 “아무래도 내가 혼자인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는 “올해 안에 이희진이 나올 거 같고, 뭘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자세한 건 내일 만나서 상의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16일 A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김씨는 “제보할 것이 있다. 밀항하려고 한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A씨의 증언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왜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는지 조사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와 숨진 이씨 아버지와의 금전 관계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 아버지에게 투자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범행했다”고 진술했으나, 현재까지 조사에서는 이씨 아버지와 김씨 간의 금전 거래 내역이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김씨가 이씨 부모에게서 빼앗은 현금 5억원이 든 가방 안에는 이씨 동생(31)이 처분한 수퍼카인 ‘부가티 베이론’의 계약서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수사 결과 김씨는 범행 후에도 이씨 어머니 휴대전화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며 이씨 동생을 유인한 정황이 파악됐다. 경찰은 김씨가 나머지 차량 매각 대금을 노리고 추가 범행을 계획한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

차량 매각 대금도 미스터리다. 경찰이 계약서를 통해 파악한 부가티 매각 대금은 현금 5억원을 포함한 15억원이다. 하지만 이 차량을 이씨 동생으로부터 구입한 중고차 중개업소에선 20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연·최모란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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