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멘토] 두산식품BG 전풍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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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바둑 두는 사람보다 훈수하는 사람이 수를 더 잘 읽는 수가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본인보다 제3자가 더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뜻이다. '종가집'이라는 브랜드로 한국 김치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두산식품BG의 전풍(52) 사장.

교수의 꿈을 꾸던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목표를 사업가로 바꾸었다. 마케팅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쌓은 박충환(62) 서던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를 만나 인생항로를 틀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전 사장은 1982년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런대에서 토목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당시 피츠버그대 경영대학원에 재직하던 박 교수였다. 80년대 초 피츠버그에는 한국 유학생이 많지 않아 박 교수는 학교를 가리지 않고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저를 지켜보던 박 교수는 어느 날 '아무래도 자네는 학문보다는 사업에 재질이 있는 것 같네'라며 중국인이 팔고 떠난 시내 음식점을 운영해 보라고 권하시더군요." 전 사장은 당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보였기에 공부보다는 돈벌이를 하라는 건가' 라며 억울해 하기도 했다.

박 교수가 전 사장의 사업가 재질을 읽은 계기는 유학생끼리 주말마다 재미삼아 하던 카드놀이였다. 가끔 자리를 같이했던 박 교수는 전 사장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베팅(돈 걸기), 노련한 게임 운영 등에서 사업가로서의 '끼'를 발견했다고 한다. 음식점 인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이 일은 전 사장으로 하여금 대학원 졸업 후 곧장 피츠버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으로 옮기는 계기가 됐다.

"당시 내 나이는 20대 후반이었습니다. 꿈은 있었지만 인생항로를 뚜렷하게 정할 나이는 아니었죠. 그때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전 사장은 질레트코리아와 오랄비코리아 사장을 거쳐 두산그룹에 들어가 오리콤과 종가집 사장을 맡는 등 16년째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고 있다. 박 교수의 '선구안'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CEO를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잘나서 그렇다'는 착각에 빠지는 수가 있다. 그때마다 자신을 객관화해야 한다는 박 교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 바로잡습니다

7월 3일자 E2면 '내 인생의 멘토' 기사에서 '전풍' 두산 식품BG 사장 성함이 '정풍'으로 잘못 나갔습니다. 기자의 순간적인 착오를 내부 제작과정에서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전풍 사장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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