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꿈을 꾸던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목표를 사업가로 바꾸었다. 마케팅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쌓은 박충환(62) 서던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를 만나 인생항로를 틀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전 사장은 1982년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런대에서 토목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당시 피츠버그대 경영대학원에 재직하던 박 교수였다. 80년대 초 피츠버그에는 한국 유학생이 많지 않아 박 교수는 학교를 가리지 않고 유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저를 지켜보던 박 교수는 어느 날 '아무래도 자네는 학문보다는 사업에 재질이 있는 것 같네'라며 중국인이 팔고 떠난 시내 음식점을 운영해 보라고 권하시더군요." 전 사장은 당시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보였기에 공부보다는 돈벌이를 하라는 건가' 라며 억울해 하기도 했다.
박 교수가 전 사장의 사업가 재질을 읽은 계기는 유학생끼리 주말마다 재미삼아 하던 카드놀이였다. 가끔 자리를 같이했던 박 교수는 전 사장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베팅(돈 걸기), 노련한 게임 운영 등에서 사업가로서의 '끼'를 발견했다고 한다. 음식점 인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이 일은 전 사장으로 하여금 대학원 졸업 후 곧장 피츠버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으로 옮기는 계기가 됐다.
"당시 내 나이는 20대 후반이었습니다. 꿈은 있었지만 인생항로를 뚜렷하게 정할 나이는 아니었죠. 그때 객관적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전 사장은 질레트코리아와 오랄비코리아 사장을 거쳐 두산그룹에 들어가 오리콤과 종가집 사장을 맡는 등 16년째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고 있다. 박 교수의 '선구안'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CEO를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잘나서 그렇다'는 착각에 빠지는 수가 있다. 그때마다 자신을 객관화해야 한다는 박 교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 바로잡습니다
7월 3일자 E2면 '내 인생의 멘토' 기사에서 '전풍' 두산 식품BG 사장 성함이 '정풍'으로 잘못 나갔습니다. 기자의 순간적인 착오를 내부 제작과정에서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전풍 사장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