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아름다운 바람 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스위스제 맥가이버 칼처럼 부엌을 접히게 만들수는 없을까.' 지난달 28일 부엌가구업체 웅진 뷔셀이 이태리 밀라노에서 개최한 부엌 국제 공모전에는 아이디어 디자인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목적 작업대를 선보인 공모전 참가자는 "부엌을 접었다 폈다하는 선반처럼 만들어 요리를 안할때는 테이블로 쓰이도록 하자는 뜻에서 디자인 제목을 스위스 칼의 브랜드를 본 따 '빅토리 눅스'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발코니에 만들어진 부엌', '요리 재료의 무게를 잴 수 있는 도마'도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부엌이 뭐 하는 곳인가'라는 기본개념에 충실해 구상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공모전 심사를 맡은 디자이너 제임스 어바인은 "요리와 식사의 방법이 바뀌는 만큼 부엌의 변화도 필연적"이라며 "이번 응모작들은 이같은 변화를 반영해 부엌을 다양한 공간으로 디자인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위부터)▶발코니 부엌 - 발코니에 슬림하게 설치한 부엌 작업대, ▶무게 도마 - 도마에서 재료를 썰면서 둥근 원 내부에 재료를 올리면 무게를 잴 수 있도록 한 디자인, ▶빅토리 눅스 - 스위스 칼처럼 필요한 용도에 따라 펴서 쓰는 다목적 작업 카운터

이번 공모전에는 총 94개국 3857명이 참가했고 최종 출품작은 948개다. 공모전을 주관한 이태리 디자인붐사 루카 트라찌 대표는 "지난해 개최된 일렉트로룩스사 등의 국제 공모전 최종 제출 작품수가 600여개 인데 비해 제출 작품수가 많았고 부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접목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밀라노에서 최종 선정된 12개 우수작은 웅진 뷔셀 본사의 제품 개발실의 평가를 거쳐 최종 수상작이 결정된다.

공모전 우수작으로는 다용도 작업대, 발코니에 설치 가능하도록 디자인 된'발코니 부엌', 작업대 가운데 허브를 키워 요리에 사용하도록 만든 생태형 부엌(사진(上)) 등 12개가 선정됐다. 디자이너 제임스 어바인, 마키오 하수이케, 루카 트라찌 등 밀라노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이 심사를 맡았고 웅진 뷔셀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부엌 설계 및 상담을 담당하는 LD(living designer) 11명도 함께 심사에 참여했다.

웅진코웨이의 박용선 사장은 "고객을 직접 마주하는 LD들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이나 실용성이 높은 디자인을 가려 내도록 심사에 참여시켰다"고 밝혔다. 제출 작품을 평가한 LD 김현숙 국장은 "부엌가구에 대해서도 소비자간 세대 차이가 큰데 이번 공모전에서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엌은 주로 일하는 공간으로 여겨졌으나 젊은 세대들은 앞으로 부엌에서의 작업은 단순화하고, 오히려 이야기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공모전에서도 부엌 가구가 그릇 수납이나 작업대 형태보다는 거실형 가구 수준의 빌트인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웅진이 디자인의 본 고장인 밀라노에서 국제적인 아이디어를 모은 것도 부엌공간의 디자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하나다.

밀라노=신혜경 전문기자

부엌가구 공모전 주관 트라찌 대표

공모전을 주관한 디자인붐 사의 루카 트라찌(Luca Trazzi.42.사진)대표는 "부엌 뿐 아니라 한국의 휴대전화.가전 제품의 디자인에 세계 각국 디자이너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공모전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참여 작품중 일부가 부엌을 앉아서 일하는 공간으로 디자인한 것은 등 동양과 서양의 부엌공간을 혼합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인 결과"라고 덧붙였다.

트라찌 대표는 "이제 부엌 뿐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 개념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관계와 생활 행태가 변하면서 부엌은 밖에서 사온 음식을 풀어 놓고 먹는 공간과 여러 사람을 불러 함께 요리하는 파티의 장으로 활용하는 경우까지 그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주택 설계는 물론 부엌가구와 생활용품의 디자인도 변해야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트라찌 대표는 베니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밀라노에서 건축가 알도 로시와 이탈리아 하원의원 건물,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 도시 센터 등을 함께 설계했다. 1993년 디자인 회사를 설립해 건축 뿐 아니라 가전제품과 커피 컵 등 생활용품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커피전문 체인점인 아일리(illy)의 커피 기계와 그릇 및 커피 숍 인테리어 등을 도맡아 설계했다. 그는 "디자이너도 가구와 생활용품 등을 가리지 말고 이를 함께 디자인 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