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독자제재가 다시 시작됐다. 미 재무부는 21일(현지시간)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혐의로 다롄 하이보 국제 화물과 랴오닝 단싱 국제운송 등 2곳의 중국 해운회사를 제재명단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랴오닝 단싱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보고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번호판없는 벤츠 리무진 차량 운송에 관여했다"고 명시한 업체다.
유엔, "벤츠 상당수 조달" 랴오닝 단싱 #"EU 주재 북 관리들 정권 물품 조달 도와" #"韓 유조선 루니스(LUNIS) 석유환적 의심" #부산 A해운사 소속, 해수부 중점관리대상
미 재무부는 "랴오닝 단싱은 유럽연합(EU) 국가에 주재한 북한 조달 관련 당국자들이 북한 정권을 위해 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수시로 기만적 행태를 보여왔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김 위원장 전용차량 벤츠 조달을 명시하진 않았다. 다만 안보리 제재보고서는 "이들 벤츠 상당수가 중국 기업인 조지 마의 지시에 따라 캘리포니아 롱비치항에서 중국 다롄으로 운송됐고, 그후 랴오닝 단싱의 컨테이너에 선적됐다"고 밝혔다. 랴오닝 단싱의 중국 웨이보 계정에는 2015년 평양 국제상품전람회 참여 업체를 모집하는 글도 올라와 있다.
이번 미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는 올해 들어 처음이다.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는 미국의 방침이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하려는 의도로도 비친다.
특히 이번 제재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북미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다롄 하이보는 미국의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백설무역회사에 물품을 공급하면서 제재회피를 조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 정찰총국(RGB) 산하인 백설무역회사는 북한산 금속이나 석탄을 수출하거나 구매한 혐의 등으로 이미 제재대상에 올라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미국, 그리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협력국들은 북한의 FFVD를 달성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으며, 북한 관련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이행이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 중차대하다고 믿고 있다”면서 “북한과의 불법적인 무역을 가리기 위해 기만술을 쓰는 해운사들은 엄청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이번 제재로 이들 법인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며 미국민이 이들과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평가되는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정권 핵심 인사 3명을 인권 유린과 관련해 대북 제재대상으로 지정한지 3개월만의 독자제재다.
이에 앞선 지난해 10월 미 재무부는 북한의 제재회피를 위해 자금 세탁을 한 혐의로 싱가포르 기업 2곳과 개인 한 명에 대한 독자 제재를 단행한 바 있다.
이번 제재는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두면서도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실행을 견인하기 위해 대북 압박을 계속 가해나가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유엔 대북제재위가 지난 12일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드러났듯 북한은 공해상에서 선박대 선박 환적으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해왔으며, 무기수출 등으로 외화를 벌어들였다.
미 재무부의 이번 독자제재는 이같은 제재회피를 차단함으로써 핵ㆍ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자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 재무부는 해상 거래의 원천 봉쇄를 위해 국무부ㆍ해안경비대 등과 함께 북한의 선박 간 환적 행위 등에 대한 해상주의보를 갱신했다고 밝혔다.
주의보에선 북한 유조선과 석유를 불법환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제3국 선박 18척 가운데 한국의 루니스(LUNIS)도 포함했다. 재무부는 석유 불법환적 북한 유조선 28척, 석탄 불법무역에 연루된 선박 49척 등 모두 95척 선박의 이름을 공개했다. 루니스는 총톤수 5412t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으로 부산 A해운사가 소유주다. 해양수산부의 올해 1분기 중점관리대상(고위험선박)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한국 선박을 직접 제재한 것은 아니지만 감시 대상에 포함한 셈이다. 불법 환적 선박의 기항지로 부산·광양·여수항 등 3개항도 지도에 표기하기도 했다.
한편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에어리얼 코언 선임연구원은 이날 포브스에 기고한 ‘북한은 중국의 도움으로 원유, 석탄을 불법적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중국이 북한의 대북제재 회피를 도우며 방해꾼(spoiler)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언 연구원은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김정은 정권의 대북제재 회피를 돕거나 부추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이 ‘불안정한 이웃’인 북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워싱턴=심재우·정효식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