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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쟁과 평화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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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소련은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승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나치 독일을 상대로 대조국 전쟁(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소전을 일컬음)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하이라이트는 흑마를 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1896~1968) 원수가 백마에 오른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옆에서 같이 사열하는 장면이었다. 로코솝스키는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8년 전인 37년 그는 갑자기 체포된 뒤 반역자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집행되진 않았지만, NKVD(내무인민위원회·비밀경찰)는 자백을 강요하며 그를 모질게 고문했다. 갈비뼈 세 대와 치아 9개가 부러졌고, 발을 심하게 다쳤다. 그는 평생 틀니를 끼고, 특수제작한 군화를 신어야만 했다.

로코솝스키가 지옥의 문턱까지 간 배경엔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있었다. 스탈린은 38~39년 자신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대숙청의 피바람은 군부에도 닥쳤다. 로코솝스키는 주요 숙청 대상인 미하일 투하쳅스키 원수와 함께 러시아로 이주한 폴란드 귀족의 아들이었다. 그는 평소 투하쳅스키의 혁신적 군사 이론을 지지해 붉은 군대의 보수적 지휘관들의 미움을 샀다. 심문 과정에서 로코솝스키가 그때까지 거뒀던 전공과 무훈은 별 소용이 없었다. NKVD는 그에게 일본과 폴란드에 기밀을 팔았다는 혐의를 씌웠고, 그걸로 족했다. 자백을 거부한 탓에 고문은 더 가혹했다.

40년 스탈린은 별다른 설명 없이 그를 석방했다.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동료들의 탄원 덕분이었다. 군복을 다시 입은 그는 41년 6월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주요 전투에서 이겨 소련을 구해냈다.

국방부와 합참이 있는 서울 삼각지에서 요즘 하마평이 화제다. 인사철이 성큼 다가오면서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상 명단을 읊을 때 ‘비(非) 육사 졸업자라서 진급한다’라거나, 반대로 ‘육사를 나왔기 때문에 낙마한다’고들 수군거린다. 실력과 능력을 제쳐놓고 정치적 고려로 짠 군 인사가 예정됐다는 뜻이다. 우려한 대로 인사가 나온다면 로코솝스키를 잃을 뻔한 소련보다 나은 점이 뭘까.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