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자잘못’은 가릴 수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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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가 재난 수준에 이른 미세먼지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중국에서 오는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중국과 자잘못을 가려 환경 문제에 공조해야 한다” “중국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며 자잘못을 따지기보다 국내 미세먼지 발생 원인부터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 “탈원전 정책의 자잘못을 따져 새로이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한다” 등과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시시비비를 가리는 분쟁이 일어났을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자잘못’이다. 억울한 일이 생겨 다른 이들에게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가려 달라고 요구할 때 많이 쓰인다. “자잘못을 가려 주세요” “자잘못을 따져 주세요” 등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잘잘못’이라 해야 한다.

‘잘잘못’을 ‘자잘못’이라 틀리게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말에 ‘ㄹ’을 탈락시켜 발음하기 편하게 만든 단어가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달달이’를 ‘다달이’, ‘솔나무’를 ‘소나무’, ‘불나비’를 ‘부나비’, ‘말소’를 ‘마소’라고 하는 것 등이 이러한 예다. 이들처럼 ‘잘잘못’도 ‘자잘못’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잘잘못’은 ‘ㄹ’을 탈락시키지 않는 단어이므로 ‘자잘못’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잘잘못을 가려 주세요” “잘잘못을 따져 주세요” 등처럼 ‘잘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잘잘못’은 주로 ‘가리다’와 ‘따지다’와 결합해 ‘잘잘못을 가리다’ ‘잘잘못을 따지다’ 등의 형태로 사용된다.

‘잘잘못’이 ‘잘(함)’+‘잘못’의 구조로, 잘함과 잘못함이 결합된 단어라는 것을 떠올리면 ‘잘잘못’이 바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좀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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