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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경찰 안줬다···버닝썬 대표, 승리 지키려고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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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버닝썬 연루 전직 경찰 강모씨 단독 인터뷰

폭행사건에 이어 고객에게 마약을 판매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경찰 수사를 받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이 지난달 16일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직원들이 다음날 짐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폭행사건에 이어 고객에게 마약을 판매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경찰 수사를 받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이 지난달 16일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직원들이 다음날 짐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 사건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손님 김상교(29)씨와 직원 간 폭행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이 사건은 현재 ▶ ‘물뽕’(GHB) 판매 등 마약 투약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30·본명 이승현)와 유리홀딩스(라멘체인점 법인)가 연루된 성접대 의혹 ▶클럽과 경찰 간 유착 및 뇌물수수 등으로 확대된 상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광역수사대 1·2계와 마약수사계, 사이버수사대를 총동원해 실체 규명을 하고 있다. 일단 경찰은 버닝썬 이문호(29) 공동대표의 마약 투약 혐의를 확인하고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지난달 27일엔 승리를 소환조사했고 2017년 2월 베트남에서 ‘해피 벌룬’으로 불리는 환각 물질을 흡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중 경찰관 유착 의혹 부분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해 7월 7일 발생한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전직 경찰 강모씨(44)씨가 버닝썬 공동대표 이성현(46)씨로부터 2000만원을 받아 이중 230만원을 강남서 경찰관 2명에게 줬다는 게 사안의 골자다. 경찰은 지난달 13일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과 해당 사건 담당 형사의 동의를 받아 계좌 추적을 벌였고 이를 근거로 지난 6일 강씨와 이 대표를 동시에 소환해 조사했다.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미성년자 출입 건 무마 때 경찰관에 돈 갔는지 집중 추궁 #강씨 “2000만원 전달은 조작 #230만원에 해결될 사안도 아냐” #이씨의 광고계약 파기 압박에 #화장품 임원 친형, 3억원 건네 #서울청 광수대 4개팀 투입해 박차 #승리의 해피벌룬 흡입 의혹도 조사

두 사람의 진술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5일 소환조사 때는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28일 2차 조사 땐 “현금 2000만원을 강씨의 중고차사업 동업자인 이모씨를 통해 줬지만 그 돈 중 일부가 경찰관들에 전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 대표가 진술을 번복한 건 경찰에서 마약 조사 동의를 거부한 날이었다. 이에 강씨는 경찰과 이성현 대표간에 모종의 딜이 있었던 것이라고 ‘플리바기닝’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6일 조사에선 "강씨에게 돈을 직접 줬다"고 또 다시 말을 바꿨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 청·장년 6명이 줄줄이 들어온다. 그중 다부진 체격의 인물은 행색이 남루했고 얼굴은 초췌했다. 강씨는 “요새 며칠째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라고 낮게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 경찰을 떠나 현재는 수입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경찰 로비 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해 풀려났다. 그는 “2000만원 로비 의혹은 이성현 대표 등 3명이 공모, ‘승리’를 보호하고 금품을 받아낼 목적으로 지어낸 얘기”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돈이 오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계속 번복되고 있어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 당사자가 인터뷰에 응한 건 처음이다. 강씨 외 일행은 A화장품 회사 이사인 강씨 친형 등이었다.

지난해 7월 7일 발생한 미성년자 출입 건 무마 조로 버닝썬 이성현 대표에게서 현금 2000만원을 전달받은 적 있나.
“전혀 없다. 2000만원은 나의 외제중고차 사업 동업자 이모씨가 조작한 금액이다. 원래 내가 이씨에게 개인적 빚이 있는데 버닝썬 사건이 터지자 내 친형을 압박해 돈을 빨리 받으려고 꾸민 것이다. 실제로 이씨는 ‘미성년자 출입 건이 문제가 될 경우 버닝썬에서 판촉 행사를 한 차례 열었던 A화장품 회사가 광고계약을 맺은 유명 아이돌그룹 측에 거액의 위약금을 물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결국 형은 이씨에게 3억원을 줬다. 이 과정에서 이씨와 이성현 대표 등 세명이 협력한 것 같다.”
근거가 뭔가.
“이 대표가 지난달 A화장품 회사 대표와 친형에게 전화를 걸어 ‘미성년자 출입 무마 건이 알려지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알렸다. 그런데 그 전화는 그달 16일 이 대표 등 3명이 서울 옥수동 커피숍에 같이 모여서 건 것이다. 그런 상황이 그대로 녹화된 CCTV를 확보해 갖고 있다.”
2000만원과 관련해 공여자·전달책 등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데.
“이씨는 처음 경찰 조사 땐 ‘지난해 8월 이성현 대표에게서 받은 2000만원 중 일부를 강씨와 함께 차에서 경찰관 2명(팀장 200만원, 수사관 30만원)에게 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다 이달 초 조사에선 ‘이 대표를 만난 적은 있지만 돈거래는 없었다. 2000만원이 100만, 500만, 500만, 300만, 340만원 등 분산 입금된 5개 계좌 중에도 경찰 명의는 전무하다’고 말을 바꿨다. (※현재 경찰은 차명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이씨는 이 대표가 자신에게 해외 도피를 주문하며 도피 자금으로 1억 3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사실도 경찰에서 털어놨다.”
해외에 나가달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미성년자 출입 무마 건으로 이씨는 이 대표도 동시에 압박했다. 이 대표는 승리를 보호하고 르메르디앙서울 호텔 쪽으로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그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1억 3000만원 중 8000만원은 전달책인 버닝썬 직원 노모씨가 중간에서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노씨는 이 건으로 긴급체포됐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곧 풀려났다.”
버닝썬 건과 관련해 누구 부탁으로 경찰과 접촉했나.
“승리의 고향 후배인 최모씨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7월 7일 새벽에 ‘문제가 생겼으니 알아봐 달라’는 카톡 문자를 보냈다. 그는 버닝썬의 MD(머천다이저)로, 아오리라멘 체인점을 두어개 운영한다. 승리의 측근이다. 그 문자를 다음날 확인했다. 당시 나는 A화장품의 판촉 행사를 대행하고 있었다. 그달 25일에도 버닝썬 내 판촉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강남서 경찰관에게 연락해 사건번호와 담당 부서 등을 알았다. 일주일 뒤 담당 형사를 찾아가 만났는데 판촉 행사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은 저절로 해결됐다. 설사 청탁을 했다 치자. 미성년자 출입 사건 기록을 삭제하고 그 미성년자를 구급차에 태운 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방식으로 사건을 무마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10년 전 그만둔 전직 경찰이 현직 경찰에게 230만원 주고 해결할 사안인가.”
버닝썬의 경영진 상황이 나타나 있는 법인 등기부등본. 승리와 승리 어머니 내용도 보인다. 인터넷 캡쳐

버닝썬의 경영진 상황이 나타나 있는 법인 등기부등본. 승리와 승리 어머니 내용도 보인다. 인터넷 캡쳐

경찰은 단서가 있으면 수사한다.
“수사의 방식이 문제다. 내 경우에도 제보자→공여자→나를 조사해야 하는데 제보자·공여자 조사 없이 나부터 긴급체포했다. 주요 사건일수록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버닝썬이 지난해 2월 개장 이후 1년여간 성폭력·마약·폭행·납치감금까지 120여건의 112신고가 접수됐는데 조사조차 안 되고 기록도 없이 유야무야됐다. 그 뒤에 누가 있는지 등 본질적인 것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되묻고 싶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광수대 관계자는 “이성현 대표의 2000만원 관련 진술 번복은 마약 조사를 안 하는 조건으로 플리바기닝한 게 전혀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성현 대표 측 관계자도 “경찰이 조사중인 사안인만큼 수사에 성실하게 임해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6일 오전 서울경찰청 광수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그에겐 영장이 재신청될 가능성이 있다. ‘민생 사건 종합 세트’ 같은 버닝썬 사건은 경찰 수사 능력의 신뢰 여부에 대한 또 하나의 시험대 성격이 짙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