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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통쾌했던 '스포츠 한·일전' 그 순간

중앙일보

입력

1954년 3월 7일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열린 일본 도쿄 메이지 신궁 경기장의 그라운드는 진흙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한국 선수들은 진흙탕 그라운드에서 5골을 넣고 일본을 꺾었다. [축구수집가 이재형 제공]

1954년 3월 7일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열린 일본 도쿄 메이지 신궁 경기장의 그라운드는 진흙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한국 선수들은 진흙탕 그라운드에서 5골을 넣고 일본을 꺾었다. [축구수집가 이재형 제공]

 올해 3월 1일은 3.1절 10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러퍼진 '대한독립만세' 함성은 일제의 침탈에 물러서지 않고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쓴 독립투사들과 선열들의 정신을 느끼게 한다.

1954년 첫 한·일전 대승...축구·야구 명승부 잇따라 #김연아·황영조·여자컬링도 일본 누르고 위상 높여

한국 스포츠에서 한·일전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 굵은 피땀을 흘린 선수들에게 온 국민을 박수를 보내고 열광했다. 그만큼 한국 스포츠에 굵직한 역사를 되새긴 순간도 많았다. 현재도 스포츠 속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고 할 만큼 비장함이 묻어난다. 3.1절 100주년을 맞아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열광했던 '한·일전 그 순간'들을 모아봤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대표팀 물품을 소장중인 이재형씨의 물품. 스위스 월드컵 한일전 포스터. [축구수집가 이재형 제공]

1954년 스위스 월드컵 한국대표팀 물품을 소장중인 이재형씨의 물품. 스위스 월드컵 한일전 포스터. [축구수집가 이재형 제공]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한국과 일본이 처음 맞대결을 펼친 무대는 1954년 3월 일본에서 열린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었다. 당시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마음은 비장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국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선수들은 전장에 나가는 군인같은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당시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출국 허가를 받는 자리에서 “패하면 선수단 모두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고 했고, 선수들은 이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자필 서명을 했다.

1954년 3월 7일 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은 5-1 대승을 거뒀다. 많은 비가 내려 진흙탕처럼 된 그라운드에서 5골을 넣으면서 일본을 무너뜨렸다. 1주일 뒤 2차전을 2-2 무승부로 마친 한국은 사상 첫 월드컵 축구 본선 무대를 밟았다. 온 국민은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을 이기고 돌아온 대표팀 선수들을 크게 환영했다. 부산에 도착한 선수들은 대구-대전을 거쳐 서울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며 큰 환대를 받았다. 선수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대한민국 만세” 함성이 쏟아졌다.

이민성은 97년 9월 28일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벼락같은 중거리슛으로 역전골을 뽑아내며 ‘도쿄대첩’을 이끌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이민성은 97년 9월 28일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벼락같은 중거리슛으로 역전골을 뽑아내며 ‘도쿄대첩’을 이끌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첫 한·일전이 펼쳐진 축구에선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순간들이 많았다. 1985년 10월과 11월, 멕시코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일본과 만난 한국은 1차전 원정에서 정용환, 이태호의 연속골로 2-1로 승리했다. 이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차전 홈에서 허정무의 골로 1-0으로 승리해 32년 전 선배들의 뒤를 이어 일본을 꺾고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1997년 9월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은 '도쿄대첩'으로 불렸다. 0-1로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후반 38분 서정원의 헤딩 동점골과 후반 41분 이민성의 통쾌한 왼발 중거리슛으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축구대표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이듬해 4월 잠실에서 열린 정기전에선 빗속 혈투 끝에 황선홍의 가위차기 결승골로 2-1로 승리한 경기도 눈길을 끌었다.

2010년 5월에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펼치는 박지성. [일간스포츠]

2010년 5월에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펼치는 박지성. [일간스포츠]

2012년 8월 10일,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2012년 8월 10일,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2010년 5월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가전에선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가 팬들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선제골을 터뜨린 박지성은 일본 서포터 울트라 닛폰을 바라보면서 마치 산책하듯 가볍게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산책 세리머니'는 일본을 상대하는 후배 선수들의 단골 세리머니로 주목받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을 2-0으로 꺾고 사상 첫 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딴 경기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을 2-1로 누르고 금메달을 딴 경기도 기억에 남을 '축구 한·일전'이었다.

한·일전에는 유독 명승부가 많았다. 한대화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역전 3점 홈런을 날렸다. [중앙포토]

한·일전에는 유독 명승부가 많았다. 한대화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역전 3점 홈런을 날렸다. [중앙포토]

야구에서도 '역사적인 한·일전 명승부'가 많았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 5-2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8회 김재박이 몸을 날려 스퀴즈 번트를 한 일명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가 터뜨린 결승 3점 홈런은 지금까지도 야구팬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야구 한·일전에서 8회가 한국에게 '기적의 8회'로 여겨지게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2006년 WBC 예선에서 8회초 투런 홈런을 치고 기뻐하는 이승엽. [중앙포토]

2006년 WBC 예선에서 8회초 투런 홈런을 치고 기뻐하는 이승엽. [중앙포토]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3·4위전,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과 2라운드 2경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한국 야구는 모두 8회에 일본의 기를 꺾어버렸다. 특히 시드니올림픽과 WBC 예선,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 8회엔 이승엽이 모두 결승타를 때려 '한·일전의 사나이'로 각인시켰다. "30년동안 일본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해주겠다"고 한 2006년 스즈키 이치로, "한국의 경계 대상은 선수가 아니라 위장 오더"라고 한 2008년 호시노 센이치 전 대표팀 감독 등 장외 신경전에도 한국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았다. 2015년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선 0-3으로 뒤진 9회 4-3 뒤집기에 성공하고 끝내 정상에 올라 한국 야구의 힘을 알렸다.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가운데)가 정봉수 감독, 손기정옹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가운데)가 정봉수 감독, 손기정옹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축구, 야구 외의 다른 스포츠에서도 한·일전은 국민들을 통쾌하게 만든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1960-70년대 프로레슬링 영웅 김일이 그 선구자였다. 1957년 일본에서 역도산 체육관의 문하생 1기로 들어가 60년대 초 일본 및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휩쓴 김일이 일본 선수들을 때려눕힐 때 국민들은 시원함을 느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남자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는 레이스 막판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를 제치고 끝내 금메달을 따내면서 56년 전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금빛 레이스를 펼쳐야했던 선배 손기정의 한을 풀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당시 여자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따고 환하게 웃는 김연아(가운데). 일본의 아사다 마오(왼쪽)는 은메달을 땄다. [중앙포토]

밴쿠버 겨울올림픽 당시 여자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따고 환하게 웃는 김연아(가운데). 일본의 아사다 마오(왼쪽)는 은메달을 땄다. [중앙포토]

겨울스포츠에서 빛났던 한·일전도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아사다 마오와 '피겨 한·일전'을 펼쳤다. 성인 무대에 올라오면서 기량이 한층 성장했던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당시 여자 싱글 최고점인 228.56점을 기록해 아사다(205.50점)를 제치고 한국 피겨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현역 시절 김연아는 아사다와 국제 대회 맞대결에서 10승6패로 앞섰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 4강전에서 일본을 연장 끝에 꺾고 기뻐하는 여자컬링대표팀. [연합뉴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 4강전에서 일본을 연장 끝에 꺾고 기뻐하는 여자컬링대표팀. [연합뉴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팀 킴' 여자 컬링대표팀이 준결승에서 일본과 연장 접전 끝에 8-7로 승리하고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확보하면서 활짝 웃었다. 연장 11엔드에서 스킵 김은정이 마지막 스톤을 드로샷으로 가운데에 넣으면서 승리를 확정한 순간은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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