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제동정류장은 1대 1000 총격전 벌인 ‘김상옥 의거터’
“이번 정류소는 김상옥 의거터입니다.”
지난달 25일 160번 서울 시내버스는 1923년 1월 22일의 종로구 효제동에 정차했다. ‘탕! 탕! 탕!’ 한 30대 남성이 일본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다. 이 한 명의 남성을 삼중으로 포위한 일본 군경은 1000여 명이다. 지붕 위에서도 쏟아지는 총탄 세례가 날아왔다.
이른바 1대 1000의 시가전이었다. 주인공은 독립운동가 김상옥(1889~1923·건국훈장 대통령장) 의사다. 이날 오전 3시30분부터 총격전이 벌어져 일본 군경 16명이 쓰러졌다. 효제동 일대에서 대치하기를 3시간여. 이제 김 의사에겐 총탄 한 발만이 남았다.
그는 이 마지막 한 발을 자신에게 겨눴다. 그리고 “자결해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던 의지를 실행에 옮겼다. 초가집에 기대앉은 채 세상을 떠난 그의 주검에선 총상 자국 11개가 발견됐다. 자결 직전까지 총상을 입고도 항일 투쟁을 한 것이다.
서울 버스 정류장 14곳, 독립운동가 이름 얻어
김 의사가 순국한 종로5가·효제동의 버스정류장에 ‘김상옥 의거터’란 이름이 더해졌다. 이 정류장을 포함해 서울 시내·마을 버스정류장 14곳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병기됐다.
서울역사박물관 정류장은 ‘김구 집무실’, 혜화동 로터리는 ‘여운형 활동 터’로 병기된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는 ‘강우규 의거터’, 효창공원 삼거리는 ‘윤봉길 의사 등 묘역’이란 두 번째 이름을 얻었다. 정류장이 있는 지역에서 의거했거나 순국하는 등 인연이 있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이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들에는 안내 방송도 나온다. 시내 버스만 타면 불과 10분 만에 100년 전 만세시위와 항일운동 현장 곳곳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하는 사업을 기획한 서해성 서울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독은 “시민들이 시내버스만 타면 빠르고 쉽게 100년 전의 독립 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며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2일부터 앞으로도 계속 병기한다”고 설명했다.
김상옥 의사가 순국한 지점(효제동 72번지)은 버스정류장에서 10m쯤 떨어진 비좁은 골목길 안에 있었다. 당시 이 자리엔 초가가 있었지만 현재는 오래된 벽돌 주택이 있다. 김 의사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중국으로 망명해 약산 김원봉(1898~1958)이 이끈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다. 1923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다가, 일본 군경 1000여 명과 총격전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거터를 알리는 표석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해성 감독은 “서울 시내에 대규모 항일 전투지가 있는데 이를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로구청에서 올해 안에 이곳에 김 의사의 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울 계획이다”고 밝혔다.
정신여고 있던 효제초교 정류장은 ‘김마리아 활동터’
서 감독과 함께 종로5가에서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효제초교·연동교회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정류장 표지판에 적힌 ‘김마리아 활동터’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20m쯤 걸어가면 옛 정신여고(1978년 잠실로 이전) 교정 터가 나온다. 김마리아(1891~1944·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은 이 학교를 졸업했고, 교사로도 일했다.
그는 유관순(1902~1920·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열사와 함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여성 항일운동을 이끌었다. 정신여고는 애국부인회의 비밀본부 격이었다. 이 사실을 안 일본 경찰은 학교에 들이닥쳐 학교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애국부인회의 조직원 명부, 태극기 등은 찾지 못했다.
지금도 정신여고 터를 지키는 500년 넘은 회화나무(서울시 지정 보호수 제120호)에 그 이유가 담겨있다. 서 총감독은 “김마리아 선생 등은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을 바로 이 회화나무 밑에 숨겼다”고 설명했다.
김마리아는 미국 유학 당시 여성 독립운동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서 감독은 “일본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투쟁을 벌이던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순국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더 많이 찾아내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까지 독립운동가 포상을 받은 1만5052명 중 여성은 325명으로, 전체의 2.1%에 불과하다.
삼선교는 조소앙 활동터…서울시, 올해 100개 정류장에 병기
이번엔 140번 버스에 올라 삼선교·한성대·조소앙 활동터 정류장으로 향했다. 조소앙(1887~1958·본명 조용은·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선생은 ‘선언서의 대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다. 1919년 2월 1일 선포된 이 선언서는 이후 2·8 독립선언과 3·1 독립선언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소앙 선생의 독립선언서는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 손으로 무찌르라”고 촉구하는 등 강력한 항일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는 해방 이후 이곳 삼선교(동소문동 1가 50번지)에서 살며 제2대 국회의원(성북구)에 당선됐다. 소앙은 그의 호다. 서 감독은 “소앙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헌장, 건국강령 등도 작성한 독립운동의 지성이자 우리 헌법에 녹아있는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 를 주창한 철학자”라고 소개했다. 조소앙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납북돼 1958년 작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 감독은 “올 안에 서울시는 버스정류장 100곳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병기할 계획”이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조국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덕분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