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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했던 트럼프, 두문불출한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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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핵담판'을 위해 전날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앞둔 오후까지 숙소에서 두문불출했다. 김 위원장이 이날 베트남 시내 한 두 곳을 둘러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의 전용차는 회담 전까지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전날 오전 12시쯤 하노이에 도착한 이후 숙소 인근의 북한 대사관을 약 1시간 쯤 방문한 게 외출의 전부다. 30시간 가까이 숙소에서 꼼짝하지 않은 셈이다. 전날 오후 9시에 도착한 뒤 이날 오전부터 응우옌 푸 쫑 국가주석 면담과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의 오찬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활발하게 움직인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조적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뒤 회담관계자들과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뒤 회담관계자들과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현지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전날 밤 시내 관광에 나서는 등 여유를 보였다”며 “하지만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실무협상 결과를 보고 받고, 정상회담 전략 수립에 전력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회담에서 대북제재의 해제 또는 완화를 이끌어 경제발전의 토대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회담에 주력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공개 행보를 통해 기싸움을 벌이기 보다는 대북제재 해제(완화)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수립에 ‘올인’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전날 밤부터 이용호 외무상 등 회담 관계자들과 여러차례 회의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했다고 한다. 북한 노동신문도 이날 김 위원장이 이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혁철 국무위 특별대표, 김성혜 당 통일전선부 실장 등을 자신이 머무는 멜리아호텔 2201호의 원탁 테이블로 불러 회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보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주석궁으로 이동해 응우옌 푸 쫑 주석과 회동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나 경제 발전 측면에서 북한의 롤 모델로 거론돼 왔다. 두 나라는 베트남 전쟁(1964~75년)을 거쳐 95년에 국교 정상화를 했다. 적성 국가에서 수교를 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있었지만 결국 관계 개선에 성공한 사례다.

 A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참석한 확대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은 (북한이) 바람직한 마음을 먹었을 때 가능한 진짜 본보기"라고 말했다. 이에 응우옌 주석은 "특별한 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무역협정식도 가졌다. 미 항공사인 보잉사가 베트남 비엣젯에 157억 달러(약 17조 5000억원)짜리 비행기를 판매하는 계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정부청사로 이동해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오찬을 했다.

 국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을 비운 26일(현지시간)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은 멕시코 장벽 관련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27일 "민주당은 내가 북한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잘 알면 지난 8년 간(오바마 정부) 했어야 했다"는 트윗을 날린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한편 김 위원장의 베트남길을 수행한 이수용(국제)ㆍ오수용(경제) 당 부위원장, 현송월 부부장 등은 이날 오전 숙소를 떠나 베트남의 대표적인 관광지 하롱베이가 있는 광린성 당서기를 찾아 면담하고, 하이퐁에 있는 산업단지를 방문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김창선 국무위 부장과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등 회담의전팀이 이날 오전 회담장인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 폴 호텔에 들러 최종점검한 것과 별도로 산업현장과 관광지 등 김 위원장의 관심사항을 챙긴 것이다.
하노이=정용수ㆍ이유정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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