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베트남 하노이 영빈관 옆 리타이또 공원. 영빈관에선 북·미 정상회담 사전 논의를 위해 북한 대표단이 엄숙한 표정으로 드나들고 있지만, 바로 50m 옆에선 베트남 젊은이들이 케이팝(K-POP)에 맞춰 춤 연습이 한창이었다. ‘한국’을 매개로 긴장감과 발랄함이 교차하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일요일을 맞아 인근 호안끼엠 호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이들의 관객이었다. 흘러나오는 노래가 데뷔한 지 보름이 채 되지 않은 한국 아이돌 그룹 ITZY의 곡이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이 작은 공연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였다.
다음날(25일) 찾은 하노이 시내 K-POP 매장. 평일 낮 시간대라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10대들로 붐빈다고 한다. 3층에 자리한 66.1㎡(20평) 남짓 크기 이 매장 1층에는 K-POP이 흘러나오고, 한글 메뉴판이 있는 한국식 카페가 있었다. 1층 카페를 운영하던 한국인이 1개월 전 3층에 K-POP 매장을 추가로 열었다. 이 매장 직원 응엔칸링(22)은 “주 고객은 10~15세 청소년”이라며 “이들이 매장을 들렸다가 카페에서 K-POP 얘기로 담소를 나누곤 한다”고 말했다.
한류를 즐기지만 북한은 이들에게 아직 생소한 느낌인 듯 보였다. 매장 직원 응엔칸링은 “북한은 한국과 다른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이 열려 한국과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걸 조금씩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매장 손님은 “북한은 그저 가난하지만 힘은 센 나라 정도의 인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류 덕분에 이번 회담을 더 진지하게 인식하는 베트남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노이 국립 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런 경우였다. K-POP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웠다가 이제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면 북한 관련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을 정도가 됐다. 지난 25일 이들과 만나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를 들었다.
“베트남의 나 같은 젊은이들이 북한에서 경제적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길”
하노이 국립 외국어대학 한국어·한국문화학부 3학년 부티투타오(22)은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맺으면 한국어를 하는 나 같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북한에서 경제적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이 선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
"미국이 베트남을 경제적으로 인정해줬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러웠다."
-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나?
"김정은은 아직 스타일이 특이한 사람 정도, 북한은 교류 안 하는 나라라는 정도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번 회담 좋은 결과가 있어서 김정은과 북한에 대한 베트남의 인식이 좋아지면 좋겠다."
- 이번 회담에서 기대되는 점은?
"북한이 빨리 비핵화하고 다른 나라와 관계를 잘 맺었으면 좋겠다. 한국을 좋아하는 만큼 북한에서 저 같은 젊은이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기회를 얻기를 희망한다."
“한국어를 하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데… 북한과 교류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이 학교 3학년 부타잉번(22)도 이번 회담 소식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김정은이라고 하면 폭력적인 이미지이지만 이번에 꼭 김정은 위원장을 실제 보고 직접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고 싶단다.
- 한국어를 왜 공부하게 됐나.
"한국어를 하면 좋은 직장에서 일할 기회가 많아질 것 같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 북미 회담을 베트남에서 한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환영한다."
- 김정은하면 어떤 느낌인가
"보수적인 사람 또는 폭력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보고 싶다."
- 북한하면 어떤 느낌?
"심심하고 폐쇄적인 느낌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나라이고. 북한 사람들은 영화나 tv 잘 안 보고, 항상 긴 치마를 입고 다니고 그런 느낌이다."
- 이번 회담에서 어떤 성과가 있으면 좋겠나.
"북한이란 나라에 대해 더 잘 알도록 교류할 기회가 있다면 직접 느껴보고 싶다."
“이번 회담을 통해 김정은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졸업을 앞두고 한국에서 한국학 공부를 더 이어가려 하는 이 학교 4학년 레티안(23)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이해가 더 깊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과격한 이미지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행보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의 변화한 모습을 보고 깨닫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베트남에서 북미회담 열린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많은 국가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선택한 건,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느낌 넘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책임감이 무겁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국제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내가 어떤 역할을 할지 생각해봤다."
- 김정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핵문제 때문에 과격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한 나라의 대표로서 그런 포지션을 취하는 건 이해가 간다. 이번 회담을 통해서 사람들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길 바란다."
- 이번 회담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한국도 통일이 되면 좋겠다. 베트남도 한때 양쪽으로 갈렸던 나라인데 하나의 길을 가면서 사회문제가 많이 해결됐다. 한국도 한 나라가 되면 사회문제 해결되고 더 큰 기회가 있을 거다."
- 김정은에게 기대하는 건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에 와서 경제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고, 앞으로 북한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면 좋겠다."
하노이=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