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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최현우 무대도 여기서 탄생···을지로 맥가이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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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젠틀몬스터에서 의뢰한 부품을 제작 중인 김승현 사장. 김정연 기자

젠틀몬스터에서 의뢰한 부품을 제작 중인 김승현 사장. 김정연 기자

“이거요? 젠틀몬스터 매장에 들어갈 거에요”
서울 중구 세운대림상가 인근에서 18일 만난 ‘서일ENG’ 김승현(44) 사장은 여기저기 홈이 패인 10㎝ 길이의 금속 부품에 이상이 없는 지 매서운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젠틀몬스터’에서 의뢰한 예술 작품에 쓰일 부품이었다. 젠틀몬스터는 선글라스·안경테로 알려져 있지만 김 사장 같은 기술자들에게 예술품 제작을 맡기기도 한다. 이같은 ‘키네틱 오브제’(kinetic object·각종 부품이나 동력장치를 이용해 움직임을 가미한 예술작품)는 예술가들의 도면에서 시작되지만, 기술자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문화 콘텐트 첨병 세운상가 장인들 #절단마술·공중부양 침대 장비 등 #마술 무대 설계·제작·연출 맡아 #솜씨 좋아 스타트업들도 단골

"을지로는 맥가이버 모인 거대 공작소"

김 사장은 14년차 ‘선반 장인’이다. 금속 등을 깎아내는 선반을 능숙하게 다룬다.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예술품을 제작해달라는 일거리도 제법 몰린다. 그는 “영국‧중국 매장에 급하게 작품을 보내기 위해 하루이틀만에 작품을 만드느라 밤을 새다시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번에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에 전시된 작품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예술작품 뿐 아니라 방송국 카메라 장비 같은 전문 장비를 수리하는 일도 한다”며 “을지로는 왠만한 부품 수리나 제작은 뚝딱 해내는 ‘맥가이버’들이 모인 거대한 공작소”라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을지로 일대는 학생이나 예술가들로 붐빈다. 김 사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작품을 제작한 일과 과학경진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은 초등학생의 작품을 만들어 준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소규모 스타트업 관계자들도 단골 손님이다. 전동휠체어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했었던 박민욱(29·동국대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씨는 “부품 하나당 수십 내지는 수백번 재설계를 해야해 을지로 일대를 밥 먹듯 드나들었다”고 했다.

최현우 무대 장비도, '마술꿈나무'도 자라는 곳

을지로 산림동에 위치한 '헤파이스토스' 내부에 각종 장비들이 널려 있다. 김정연 기자

을지로 산림동에 위치한 '헤파이스토스' 내부에 각종 장비들이 널려 있다. 김정연 기자

좁은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보이는 ‘헤파이스토스’의 신희용(28) 사장도 늦은 밤까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마술사들 사이에서 무대 설계‧제작과 연출까지 하는 이른바 ‘마술 빌더(builder)'로 알려져 있다. 4년 전 산림동에 작업실을 차렸다. 절단 마술에 쓰이는 각종 장비나 공중부양 마술에 필요한 침대 장비 등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신 사장은 “마술사 최현우 등의 공연 장비를 제작하면서 이제는 일거리가 꽤 몰린다”며 “작업장에서 새벽까지 흘리는 땀이 이제는 익숙하다”고 했다. 그는 기자가 각종 마술 부품들을 촬영해도 되느냐고 묻자 “영업비밀이라 밝히기 곤란하다”고 웃어보였다.

신희용 사장이 제작한 마술사 최현우의 무대 일부. 김정연 기자

신희용 사장이 제작한 마술사 최현우의 무대 일부. 김정연 기자

신씨 곁에는 일만 아니라 ‘마술 꿈나무’들도 몰린다. 마술 장비를 이해하고 공연 연출 등을 배우기 위해서다. 최정호(18)씨는 “명절에 TV에서 마술쇼를 보고 마술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올해 열리는 국내 마술페스티벌에서 수상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6개월 간 신씨의 작업실에서 땀을 흘린 최진호(16)씨는 23일 ‘큐슈기술연합회 전국 마술대회’에서 3위에 오른 ‘실력자’다.

61세 사장님도 뛰어든 3D프린터 만들기

세운상가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차광수(61)씨가 3D프린터를 조립하고 있다. 김정연 기자

세운상가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차광수(61)씨가 3D프린터를 조립하고 있다. 김정연 기자

“볼트는 다 맞는데 넛트가 왜 남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네요(웃음)”
23일 오후 4시, 종로구 세운상가 5층에 마련된 ‘세운메이커스 교육장’에선 교육생 10여명이 갖가지 공구를 들고 조립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소형 3D프린터를 직접 제작하려 전국에서 모인 ‘메이커(Maker)'들이다. 기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3D프린터가 대체로 고가이다보니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교육 목적으로 배워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거는 부품 4개를 겹쳐 끼우시면 돼요”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이동엽(46) 아나츠 대표가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넘나들며 훈수를 뒀다. 이날 교육장의 최고령자는 차광수(61)씨였다. 세운상가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다가 뒤늦게 3D프린터에 눈을 떴다고 했다. 그는 “나는 케케묵은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늦깎이 교육생처럼 첨단 기술을 배워보려니 쉽지 않다”고 웃었다. 광주에서 온 김보람(29)씨는 “3D프린트는 크고 비싼데, 싸고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수강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아나츠 윤세원(30) 팀장. 김정연 기자

수강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아나츠 윤세원(30) 팀장. 김정연 기자

수강생이 3D 프린터로 제작한 종이 꽂이. 기자의 명함을 꽂아 봤다. 김정연 기자

수강생이 3D 프린터로 제작한 종이 꽂이. 기자의 명함을 꽂아 봤다. 김정연 기자

강원도에서 온 선생님 4명도 이날 만큼은 ‘제자’로 변신했다.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작동법을 익혔다. 교사 송은영(41)씨는 “아이들 교육용으로 도전해봤는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신기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윤세원(30) 아나츠 팀장은 “보급형 3D프린터에 매력을 느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교육장을 찾는 분들이 많다"며 “일부 교육생들 중에는 기술자들도 있어서 더 가볍고 저렴한 3D프린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언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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