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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군 3·1운동 이끈 김세환 선생 생가터, 스토리로 부활할까

중앙일보

입력

수원군 3·1운동 기획·지도

1919년 3월 1일 땅거미가 내려온 경기도 수원군(현 수원·화성·오산시) 수원면 화성 화홍문 방화수류정. 횃불을 든 수백명의 사람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횃불은 군사용 통신시설인 봉수대에서도 밝혀졌다. 팔달산 서장대 등 20여곳의 성곽에서 일제히 봉화가 타올랐다. 남문 밖 객주에서 머물고 있던 상인들도 횃불을 보고 달려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경기도 수원시 3.1운동 기념비 [사진 수원시 포토뱅크]

경기도 수원시 3.1운동 기념비 [사진 수원시 포토뱅크]

이날 만세 운동은 보름 뒤 팔달산 서장대와 동문 안 연무대 등으로 퍼졌다.
같은 달 29일엔 김향화(1897~미상) 등 수원기생조합 소속 기생들이 경찰서 앞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읍내에서 시작된 만세 운동은 수원군 곳곳으로 퍼졌다. 현재 화성지역인 장안면, 우정면 등에선 일제의 행정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 우편국, 일본인 가옥들이 파괴되고 일본인 순사를 처단됐다. 이동근 수원시 학예사는 "수원면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까지 경기도 전역에서만 225회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수원군은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 경기도 안성 등과 함께 3·1운동 전국 4대 항쟁지가 됐다.

이런 수원군의 만세운동을 기획·주도한 사람이 바로 김세환(1888~1945) 선생이다.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한 그는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교육가이자 민족운동가다.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 242번지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주오(中央)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 야간인 수원상업강습소와 삼일여학교의 학감(교감)으로 일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교 건물 벽에 한반도 지도를 조각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수원군 3.1운동을주도한 김세환 선생. [사진 독립기념관]

수원군 3.1운동을주도한 김세환 선생. [사진 독립기념관]

수원군 교육·문화 사업에도 앞장

그는 경성 기독교청년회(YMCA) 간사였던 박희도와의 인연을 계기로 3·1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박희도에게 3·1운동 계획을 지방 사람들에게 알리고 동지들을 모집하라는 요청을 받아 경기도(수원)와 충청지역을 담당했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 관장은 "유관순 열사로 대표되는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도 김 선생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김세환 선생은 3·1운동을 알리기 위해 발로 뛰는 한편 제자인 김노적(1895~1969) 선생 등과 수원군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실행했다. 이는 '경기도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이선경(1902~1921) 등 경기지역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수원에서 3월 1일과 16일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벌어지자 일본군은 삼일여학교를 급습해 사무실을 파괴했다. 김세환 선생이 만세 운동의 주동자인 것을 확인해 주는 일화다.
김세환 선생은 경성에서 진행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12일 체포됐다. 360일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됐지만, 일본의 감시로 다시 교편을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러 교육·문화 사업에 참여했고 광복을 맞은 1945년 9월 16일 숨을 거뒀다.
수원시는 지난해 8월 김세환 선생 등 수원지역 독립운동가 8명을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김세환 선생이 출옥 후 가족들과 찍인 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김세환 선생이 출옥 후 가족들과 찍인 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생가터 카페에 사진 등 전시 검토

수원군은 전국 4대 3·1운동 항쟁지로 일컬어지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생가 등 관련 유적지도 도시개발과 함께 사라졌다.

김세환 선생 생가터에 들어선 안내판. 최모란 기자

김세환 선생 생가터에 들어선 안내판. 최모란 기자

김세환 선생이 태어나고 생활했던 남수리 242번지 자택엔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김세환 집터'라는 검은색 안내판만 덜렁 서 있다.
김향화 등 수원 기생들이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던 화성행궁 일대는 이런 표식도 없다.
일각에선 인근 상가 등과 협업을 통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리자고 제안했다. 생가 등 역사적 공간을 복원하긴 어려운 만큼 인근 상가 등에 이런 정보를 알려 스토리텔링 작업을 통해 기리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원박물관은 김세환 선생 집터에 들어선 커피전문점에 김 선생의 사진 등을 전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커피전문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르면 4월부터 전시에 들어간다.
한동민 관장은 "역사적인 지역 인물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른 수원출신 독립운동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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