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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찬 순사’ 거론하며…권력기관 개혁 포문 연 문 대통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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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호 06면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권력기관 개혁 관련 법안 처리를 위한 여론전에 직접 나섰다.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를 통해서다.

“비뚤어진 그림자 벗는 원년 돼야” #청와대 회의서 관련 법안 처리 촉구 #검·경 수사권 조정 이견 못 좁힌 듯

문 대통령은 “국정원·검찰·경찰 개혁은 정권의 이익이나 정략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시대적 과제”라며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혁의 법제화와 제도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법을 통해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항구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관련 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하도록 (야당이) 대승적으로 임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권력기관 개혁의 필요성을 일제 식민통치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에 검사와 경찰은 강압적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는 기관이었다”며 “조선 총독에 의해 임명된 검사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규정됐고 경찰은 의병과 독립군을 토벌하고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며 국민의 생각과 사상까지 감시하고 통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칼 찬 순사’라는 말처럼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특히 경찰에 대해서는 “광복 후에도 일제 경찰을 그대로 편입시킴으로써 제도와 인적 쇄신에 실패했다”며 “올해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치며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다”며 처음으로 교체 대상을 친일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날도 “선조들은 100년 전 3·1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원칙과 토양을 만들었다”며 “대통령과 청와대·정부 또한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겠다. 국회도 국민의 여망에 응답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개혁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자치경찰법안 등의 연내 처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검·경은 이날도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였다. 청와대는 기관별 보고와 토론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쟁점이 된 부분부터 말하겠다”며 수사권 조정 문제를 꺼냈다. 관련 논란이 있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은 가능하면 동시에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며 “수사권 조정만 하면 경찰이 비대해져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균형을 위해서라도 경찰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수처에 대해서는 검찰의 양보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검·경이 대통령 친인척과 주변 비리에 대해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2002년 대선 때 (공수처가) 노무현·이회창 후보 모두의 공약이 됐다”며 “검·경이 검사 비리에 대해서도 직접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다면 공수처가 왜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야당도 공수처 설치에 협조적이지 않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공수처에 대해 국민의 70~80%가 찬성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관련법 처리에 반대하는 야당 설득이 우선이지만 만약 계속 반대할 경우 국민을 믿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에 실패할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둔 일종의 ‘여론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날 개혁의 대상과 이에 반대하는 진영을 사실상 ‘친일의 잔재’로 규정한 것도 향후 여론전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 정부 들어 과거처럼 크게 비난받는 권력형 비리나 정권유착 비리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이어 “사법개혁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사법부는)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울타리로서 (개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다. 진지하게 논의를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사법개혁을 강조하며 쓴 ‘매우’는 문 대통령이 현장에서 즉석에서 넣은 말이다. 이날 회의에 검·경의 수장인 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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