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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눈]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토트넘 손흥민’이 진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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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손흥민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 도르트문트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최근 4경기 연속골.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도르트문트전 개인 통산 9골(11경기)을 기록하게 됐다. [AP=연합뉴스]

손흥민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 도르트문트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최근 4경기 연속골.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도르트문트전 개인 통산 9골(11경기)을 기록하게 됐다. [AP=연합뉴스]

토트넘 손흥민(27)의 상승세가 눈부시다.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14일(한국시각)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손흥민은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해 후반 2분 도르트문트(독일) 골문에 결승골을 꽂아넣었다. 토트넘은 3-0으로 크게 이겼다. 올 시즌 16호 골이자, 4경기 연속골이다. 손흥민은 이날 골로 올 시즌 출전한 모든 대회(정규리그·리그컵·FA컵·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기록했다.

손은 왜 대표팀과 소속팀서 다를까 #경기 운영·선수 역량 등 차이 나 #대표팀선 혼자 유인·돌파·마무리 #토트넘선 동료들의 지원 활발

지난해 12월 이후 이어진 ‘손의 승리 공식’이 한 번 더 들어맞았다. 손흥민은 지난해 12월 이후 16경기에서 13골을 넣었다. 정규리그 10골, 리그컵과 FA컵, 챔피언스리그 1골씩이다. 이 기간 손흥민이 골을 넣은 경기에서 토트넘은 100% 승리했다.

손흥민이 활약하면 할수록 곱지 않은 시선도 일부 엿보인다. 최근 그의 득점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기사에는 “아시안컵(또는 대표팀)에선 부진하다가, 소속팀에선 펄펄 나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곤 한다. 토트넘에서 연일 득점포를 터뜨리는 모습과 대표팀에서 7경기 연속 무득점인 상황이 너무도 대조적이다 보니 나오는 비판이다. 일각에선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를 받고 나자 대표팀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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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선 침묵하다가 소속팀에 돌아가면 맹활약하는 ‘손흥민의 두 얼굴’.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국 축구의 레전드 차범근(66) 전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물어봤다. 차 감독은 “나도 현역 때 똑같은 고민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며 “(손)흥민이가 불필요한 오해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차 감독의 분석이다.

손흥민이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논스톱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손흥민이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논스톱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과장을 조금 보태 요즘 손흥민 보는 재미에 산다. 그라운드에 나섰다 하면 어김없이 골을 넣어주니, 새벽 시간 잠을 설쳐가며 경기 볼 맛이 난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표팀에서의 골 침묵을 거론하며 (손)흥민이의 진심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래서 더 아쉽다. 상황에 따라 경기력은 다르게 나올 수 있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표정만 봐도 어떤 마음가짐인지 알 수 있다. 축구 선배로서 단언할 수 있다. 손흥민은 어떤 경기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손흥민에게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대표팀에서 체력을 아끼거나 몸을 사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보다는 서로 다른 경기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선택과 집중’의 결과로 해석하는 편이 옳다는 생각이다.

토트넘을 포함한 유럽 축구는 공격과 수비 모두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찬스가 오면 최후방 수비라인도 상대 지역 깊은 곳까지 올라가 공격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가급적 공·수 간격이 흐트러지지 않는 게 포인트다. 상대 위험지역 근처에 더 많은 선수가 다가서면 공격 옵션이 한층 다양해진다. 최전방에서 볼을 받아 슈팅을 시도하는 손흥민 입장에서도 이런 패턴의 공격 방식이 훨씬 수월하다. 어떤 각도에서 어떤 높이로 위험지역에 볼이 들어올지 몰라서 상대 수비가 느끼는 혼란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경우 공격을 진행할 때 우리 선수들의 위치가 (토트넘보다) 상대적으로 서너 걸음 정도 (우리 진영으로) 내려와 있다. 결정적인 찬스를 만드는 과정에 패스 한두 번, 또는 서너 걸음의 드리블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차이가 상대 수비진에게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다. 아시안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꾸준히 경기를 지배하면서도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다. 이러한 경향은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축구대표팀 감독 전술과는 무관하다. 골을 넣는 것보다 실점을 막는 데 치중해 온 한국 축구 특유의 정서가 만들어낸 ‘본능적 움직임’이랄까.

손흥민의 골 결정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를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하는 포체티노 감독과 달리, 대표팀에서는 공격 흐름의 조율을 위해 손흥민을 2선에 배치해야 하는 것도 일종의 딜레마다. 토트넘에는 빌드업을 거쳐 최전방에 볼을 배달할 수 있는 선수가 여럿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이 역할을 수준급으로 해내는 선수가 한정돼 있다.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공간을 파고들고, 동료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손흥민이 직접 소화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슈팅 기회는 줄고, 체력도 빨리 소모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현역 시절 내내 (손)흥민이와 같은 고민을 품고 살았다. 독일에서 뛸 땐 월드클래스 동료들의 수준급 패스 지원을 받으면서 득점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뛸 땐 아무래도 짊어져야 할 역할이 더 많았다. 상대 수비수들이 예외 없이 집중 마크를 펼친다는 점도 부담스러웠다.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흥민이가 받을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겨내야 진정한 월드클래스다. ‘수퍼맨’을 바라는 팬들의 기대감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부딪쳐야 한다. 그게 ‘에이스’의 숙명이다.

정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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