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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규제 만드는 국가 실력 부족…기업들 개점휴업 상태”

중앙일보

입력

조규곤 파수닷컴 대표가 본 규제 20년

규제는 생물이다.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진화한다. 이런 규제의 속성을 20년간 기업 현장에서 지켜 본 사람이 있다. 파수닷컴의 조규곤(60) 대표다.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해 유학 후 삼성 SDS로 옮겨 사내 벤처를 차렸다가 2000년 파수닷컴을 설립했다.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대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인 조규곤 파수닷컴 대표. [사진 파수닷컴]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대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인 조규곤 파수닷컴 대표. [사진 파수닷컴]

그는 DRM(디지털 저작권 보호) 기술로 ‘닷컴 버블’의 붕괴 속에서 살아남아 현재 연매출 300억원을 올리는 탄탄한 중소기업을 일궜다. 하지만 같은 삼성 SDS 사내벤처 출신인 네이버같은 ‘잭 팟’은 터트리지 못했다. 빅데이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5년 전부터 비식별정보 처리 기술(개개인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가명 처리하는 기술)에 투자해 왔지만, 정권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규제 완화 소식은 오리무중이다.

정권 바뀌어도 규제 완화 ‘원점’ #해외선 빅데이터로 부가가치 생산 #국내 기업은 눈치보며 ‘대기 상태’ #새시대 맞는 창조적 규제 필요

7년째 제자리 개인정보보호법 완화

박근혜 정부가 2013년부터 추진해 오던 개인정보보호법 규제 완화 움직임이 2014년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며 올스톱 됐다. 이어 2년 뒤 정부는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 활용한 기업들이 소송을 당하면서 시장이 위축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당장 개인정보보호법이 완화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파수닷컴은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행사’에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이달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 있는 파수닷컴 본사에서 조 대표를 만나 규제와 기업 경영 환경에 대해 물었다. '격정 토로'를 기대했지만 그의 반응은 오히려 덤덤했다.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내부 모습. 김경진 기자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내부 모습. 김경진 기자

지난해 연말엔 통과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생각보단 의외로 논란이 빨리 진전됐다. 그동안의 관행으로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관행을 말하나.  
정부는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대로 가고,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일방통행을 한다. 그래놓고 그 다음에는 국회로 공을 넘긴다. 합의된 절차에 의해 의견이 수렴되면, 미흡하더라도 서로 수긍해야 하는데 정부안이 나왔는데도 시민단체 반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결론을 빨리 도출해 내는 것도 중요한데 시간을 너무 끈다. 시간을 끄는 면에서 본다면 매 정권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것에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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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내부 모습. 김경진 기자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내부 모습. 김경진 기자

결론을 빨리 도출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균형점을 늦게 찾으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시간이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관련 산업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런 움직임을 할 수 없다. 먼저 앞서가다 법에 저촉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산업 전체가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쟁력을 말하나. 
4차 산업의 핵심인 인공지능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활용성이 높은 데이터는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명 처리와 분석 기법을 통해 이를 잘 활용해야 다른나라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 생산할 때도 다음 모델엔 어떤 기능을 넣는 게 시장 반응이 좋을까를 미리 판단하면 리스크를 줄이면서 제품을 기획할 수 있다.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해외 업체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 경쟁력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내부 모습. 김경진 기자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 위치한 파수닷컴 본사 내부 모습. 김경진 기자

파수닷컴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파수닷컴의 경우 전체 매출액에서 비식별조치 관련 매출은 전체의 2~3%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시장 자체가 형성돼있지 않다. 우리도 우리지만 빅데이터 센터를 만들어 전담 조직을 둔 금융 회사들이 힘들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당장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야 하는 곳들은 조직을 그냥 놀리고 있다. 신약 분야도 금융사나 통신사의 정보를 결합한 데이터를 활용하면 소비자 맞춤형 제품 개발과 마케팅이 가능한데, 현재 법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기 상태’인 회사가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규제 20년’을 겪으며 느끼는 소회는. 
벤처 창업 당시는 규제가 아예 없었다. 현재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비된 지도 얼마 안됐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만들어지자마자 활용(규제 완화)이라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만큼 산업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남의 나라 산업을 뒤따라 가면서 규제나 법도 그냥 베끼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리딩 그룹과 함께 달리고 있어 규제를 마냥 따라 할 수만도 없다. 규제를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는 새롭고 창의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창조적 규제’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실력이고 능력인데 우린 그게 부족하다.
파수닷컴 본사의 직원 휴식 공간. 김경진 기자

파수닷컴 본사의 직원 휴식 공간. 김경진 기자

규제 때문에 창업을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창업을 하려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규제를 먼저 염두에 두어선 안된다. 규제가 겁나서 뭘 못한다, 그건 기업가 정신이 아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수요 제기를 하면서 규제를 해쳐 나가게 돼 있다. 정부와 국회에 맞서 규제를 헤쳐 나가는 것도 기업가의 몫이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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