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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고래의 꿈으로 돌아온 단원고 별들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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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단원고 희생자 261명을 등에 지고 수면 위로 승천하는 노란색 고래 모습을 형상화한 추모 조형물. 단원고 체육관 맞은 편에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단원고 희생자 261명을 등에 지고 수면 위로 승천하는 노란색 고래 모습을 형상화한 추모 조형물. 단원고 체육관 맞은 편에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세월호 희생 학생들 한때 제적 #관련 규정 고쳐 명예 졸업생으로 #미수습자 위해 졸업식 3년 미뤄 #유가족들, 졸업앨범 보며 눈시울

12일 오전 10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본관 4층 단원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선배들을 위한 합창이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단원고 학생 250명의 명예 졸업식이 열렸다. 생존 학생들이 졸업한 지 3년 만이다.

학교 정문에 ‘노란 고래의 꿈으로 돌아온 우리 아이들의 명예 졸업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졸업식장인 단원관까지 가는 길목에는 노란 리본이 나부꼈다. 졸업식에는 유가족과 생존 학생, 재학생, 교직원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졸업생 이름이 적힌 의자에 꽃다발·졸업장·졸업앨범이 놓였다. 고(故)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 유경근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은 식에 앞서 “일방적 제적 처리 같은 아이들과 유가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졸업식을 하기로 했다”고 졸업식 추진 배경을 밝혔다.

세월호 희생 학생들은 지난 2016년 1월 생존 학생들이 졸업할 당시 제적 처리됐다. 이후 같은 해 11월 교육부 훈령 ‘학교 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에 따라 명예 졸업생이 됐다. 학교 측은 2016년 졸업식 당시 희생 학생들에게도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려 했지만 미수습 학생들을 위해 미뤄달라는 유가족 요청으로 보류했다. 학교 관계자는 “유가족이 올해 명예 졸업식을 원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식이 시작되자 스크린에서 학생들의 생전 모습과 캐리커처가 담긴 추모 동영상이 나왔다. 양동영 단원고 교장은 차례로 명예 졸업생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이 이어지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양 교장은 고(故) 전찬호 학생의 아버지 전명선씨(전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위원장)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한 뒤 그를 꼭 끌어안았다.

단원고 후배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물의 기도’와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합창했다. 유가족들은 졸업 앨범을 펼쳐보거나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슬픔을 감추려 애썼지만 울음소리는 계속됐다. 식에 참석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헛된 희생이 없도록 사람 중심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시종 울먹였다. 역시 추모사를 하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희생 학생 제적과 관련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

양 교장은 “매 주기 추모 행사를 할 것”이라고 밝히며 “노란 고래의 꿈으로 돌아온 단원고의 별들이야…따사로운 햇살처럼 다가와 우리 곁에 꽃으로 피소서”라는 시를 읊었다. 전명선씨는 회고사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힘들었지만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등 사회 변화도 있었다”며 “단원고 추모 공간인 4·16 민주시민교육원 건립 등 별이 된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단원고 졸업생인 이희운(21·여)씨는 “여전히 모습이 떠오르는 선배들에게 오늘은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편지를 낭독했다. 졸업식 마지막 순서로 교가 제창을 했지만 일부 유가족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식이 끝나고도 유가족들은 한참 동안 자리를 지켰다. 2학년 9반 희생 학생의 오빠 조수빈(23)씨는 “속상하지만 동생이 늦게라도 명예 졸업을 하게 돼 고맙다”고 말했다. 2학년 7반 희생 학생의 한 어머니는 “아직 4월 16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안전사회를 만들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굵은 눈물을 떨궜다.

참석자들이 떠난 단원관에는 찾아가지 않은 희생 학생들의 졸업장과 졸업앨범이 남았다.

안산=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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